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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간의 즐거움

 

일주일 간의 즐거움

 

회장 이흥렬

 

나는 오래전부터 몸이 불편하여 외출할 때면 전동휠체어를 타야만 바깥출입이 가능하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일찍 찾아왔고 극심한 폭염 속에 여름 방학이 되어 세 명의 손자 손녀가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잖아도 몇 주간 애들을 보지 못해 궁금하던 차에 여름 방학을 맞아 몰려온 아이들이 너무 반갑고 좋았다. 여느 때 같으면 혼자 조용히 독서하면서 글이나 쓰고 약간은 지루하고 고독한 일상일텐데 한꺼번에 세 명이나 모여서 참새처럼 조잘대며 노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북새통을 이루는 모양에 정신이 없어도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라 커가는 애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마당 한편에 조립식 수영장에 물을 받아놓고 물장구치며 장난을 치는 손자와 손녀들의 웃는 얼굴이었다.

천진난만하게 뛰놀다가 다투고 다투다가도 언제 다퉜는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화해하고 할아버지인 나도 들어오라고 팔을 잡아당기고 손자는 나의 등을 미는 바람에 다리만 담가 함께 놀다가 보니 어느새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신이 났다. 발로 물을 한번 첨벙 치면 파도같이 아이들을 덮쳐도 깔깔거리며 함박웃음으로 소리치다가 기회가 오자마자 나에게 일제히 물을 뿌리는 바람에 옷을 다 젖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인지 인식하지 않고 평범한 할아버지로 바라보며 거리낌 없이 대하는 녀석들이 있어 나를 행복이라는 것에 한층 더 느끼게 해 주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하듯이 간이 수영장에서 한참 잘 놀다가 지쳤는지 하나 둘 빠져나가는 아이들에게 “놀았으면 씻어야지.” 한마디에 또 우르르 달려가 서로 먼저 씻겠다고 장난 반 싸움 반으로 시끌벅적해지는 것을 보면서 “차례대로 씻어라.”는 지시에 따라 금방 조용하게 질서에 따라 씻고 나와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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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더할 나위 없는 정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어린 저들은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왜 천천히 움직이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몇 년 전에 처음 세상에 눈을 뜨고 의식이 생길 때 나를 보며 아이들이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그래요? 아파요?” 등 등 묻는 것도 많았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고 평범하다.

날씨가 무덥지 않으면 전동휠체어를 타고 함께 동네 공원에 돌아오느라면 아이들은 앞서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이 강에서 엄마 오리를 쫄쫄 따라다니는 모습을 연상케 했고 가는 곳마다 들 풀이며 들꽃이 보이는 것마다 신비한 눈초리로 쓰다듬어 만지는 촉감도 느끼며 좋아하다가도 장난도 치고 휠체어 뒤에 올라타기도 하고 꽤 큰 아이는 아예 나의 등과 휠체어 등받이 사이에 올라서서 달리는 쾌감을 체험하며 너무 좋아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다.

“얘들아, 너희와 같이 나오니 할아버지가 기분이 너무 좋아.” 아이들도 덩달아 서로 “나도” “나도” 외친다.

그 말에 우리는 깔깔 웃었다. 공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아이스크림도 먹고 할아버지도 아이스크림 드세요. 하며 챙겼다. 손자는 유난히 나를 알뜰하게 챙기는 아이라 작은 기침을 해도 달려와 할아버지 아파요?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너무 기특해 웃음꽃이 피었다.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던 손자가 지루했는지 “할아버지 끝말잇기 할래요?” 하기에 나는 하자고 하니 “기차” “차도로” “로버트” “트라이 앵글” 그렇게 몇 번을 주고받고 있는데 손녀들도 나도 할래 하며 끼어들었다. 그렇게 몇 번 돌면서 나는 되도록 쉬운 단어로 애들이 잘 따라가도록 해 주었고 애들은 한 단어 두 단어 맞추어 가는 것이 재미있고 신이 났다.

이렇게 좋아하는 애들을 보면서 나는 눈가에 이슬이 조금 젖어 있었다. 우리는 끝말잇기도 장난치는 것도 멈추고 또다시 그들만의 시간으로 돌아가 각자 취미 활동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 게임 하는 아이, A4용지에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리는 아이, 여러 가지 모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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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 하는 아이, 언제 배웠는지 그림도 잘 그리고 종이접기 귀재라 할 정도로 다양한 모양을 접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내가 불편함을 눈치챈 손자가 내 곁에 조용히 앉아 “할아버지 내가 지켜줄게.”

나는 손자의 손을 꼭 잡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 순간 나는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알 것 같았다.

전동휠체어는 놔두고 아내가 모는 차에 일반 휠체어를 싣고 세 명의 손주를 태우고 음식집을 가는데 휠체어가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길도 있었고, 높은 턱 때문에 돌아가야 하는 곳도 있어도 손자가 다 밀어가며 힘겨운 곳은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끝까지 해내는 것을 보며 기특한 마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길이었는데, 할아버지와 함께 다녀 보니 세상에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힘든 길이 있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힘든 순간에도 즐거움은 있었다. 손자가 휠체어를 밀다가 너무 빠르게 가서 내가 깜짝 놀라자 한바탕 웃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가도 좋으니 함께 가는 게 제일 좋다.”라고 말하며 애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며 식당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먹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일주일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 되자 집 안은 조용해졌다. 짐을 싸고 아이들은 우리를 바라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역력했다. 우리 부부도 헤어지는 것이 싫어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 다음 방학에도 꼭 올게요.”

인사를 하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 나는 지난 일주일을 생각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공원에서 웃기도 했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불편한 몸과 외로움,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의 아픔도 조금은 체험하는 시간과 할아버지인 나의 장애를 장애로 특별하게 보지 않는 그 일주일이 그들에게 장애란 단순히 몸이 불편하다는 것보다 다양한 식견을 갖도록 해 주는 것이 나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가르쳐 주었다면 이번 일주일간의 시간이 그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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