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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26 민들레 문학상 가작

도심의 옹달샘

장길숙

도시의 한복판,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공간이 있다. 숲속 오솔길처럼 편안하고 정다움이 서린 곳, 부담 없이 쉬었다 가는 복지관은 시골 마당에 평상 같은 곳이다. 남녀노소 신분도 따지지 않는 도심의 옹달샘이다. 고향 마을 초입에 선 우람한 느티나무 그늘처럼 넉넉함이 있다.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동글동글한 시간을 만든다.복지관 아담한 카페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야기꽃이 피어나고 밝은 웃음이 터진다. 내가 근무하던 직장이기도 하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일이라 살짝 가슴이 떨렸다.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다른 사

람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 걱정을 거둬가 버렸다. 그들은 친절하게 원두커피 내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덕분에 나는 각종 커피음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냉커피와 여러 가지 과일 음료를 척척 만들었다. 동행 420은 복지관 이용인들의 교육 장소이기도 하다. 전문가에게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배우는 건 재미있었고, 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열대 나라 아이들이 힘겹게 커피콩 따는 모습을 화면을 통해 보았다. 커피가 우리 손에 오기까지 누군가의 힘든 삶을 알게 되었다.172

복지관은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사랑방처럼 훈훈하다. 체력단련실에서 열심히 운동하다, 취미로 장기를 두다가 차를 마시기 위해 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잠시 쉬며 정담을 나눈다.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세상 사는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어느 날, 낯익은 두 사람이 카페로 들어왔다. 자주 보는 얼굴들이어서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은 심리치료를 받는 친구들이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물론 겉모습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할 수는 없다.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한참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그래도 마음대로 걷고 어디든 다닐 수 있잖아. 스스로 걷지 못하는 이들의 생활은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겠어.”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해졌다. 처음에는 그들이 지체장애인을 보고 품는 우월감이나 동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따뜻하고 조심스러웠다. 자신들이 겪은 마음의 상처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고 고난을 겪어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듯, 그들이 지체장애인을 바라보는 마

음에는 편견이 없었다. 육신이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걱정하는 마음이 오롯이 내게 전달되었다. 그저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사람들 천지인 세상이라 따뜻함을 만나면 마음이 열린다. 몸이 불편한 다른 친구를 보고 한 말이었지만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아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복지관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푸릇푸릇 생기가 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에 나무를 심어 알뜰히 가꾼 덕분이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걸으며 몸과 마음을 단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푸른 길 산책로다. 사람뿐 아니라 새들도 피곤한 날개를 쉬어간다. 여름이면 매미들의 천국이다. 도로의 소음을 다 삼켜버릴 듯 거세게 울어댄다. 녹음이 짙을수록 매미의 울음은 오케스트라가 된다. 푸르름이 흥건히 고인 길에서 비둘기들을 자주 만난다. 비둘기는 먹이를 혼자 먹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친구들을 부른다. 여기 맛있는 게 있으니 빨리 오라며 ‘구구구’ 쉼 없이 목청을 돋운다. 어디선가 한 마리 두 마리 연이어 날아들고 어느새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먹이 앞으로 모여든다. 비둘기는 함께 날고 먹이도 같이 먹는다. 그 푸릇한 길에 모여 있는 비둘기를 보면 기분이 좋다. 가을이 되어 낙엽이 수북이 쌓여도, 겨울날 눈이 하얗게 길을 덮어도 비둘기들은 다정했다. 모두가 비둘기 같은 마음이라면 장애, 비장애 편견 없는 세상이 되어 평화가 깃들 것 같았다.

장애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들로 인해 내가 위로받을 때가 많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비장애인과 어울리다 보면 가끔은 비틀거리고 허우적댄다. 그러나 이곳에 오면, 같은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동질감 때문인지 걸음걸이마저 당당해진다. 마음이 정화되고 차분해진다. 날마다 직업 지원동에서 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몇 명씩 어울려 다녔다. “이모! 얼음 두 개만.”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얼음 두 개만 넣어 달란다. 친구들은 나도, 나도 하며 종이컵을 내밀었다. 얼음을 받아든 친구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복지관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언니가 되고 이모가 되고 누님이 되었다.

한 친구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사진 찍기와 문자, 카톡 보내는 방법 등이었다. 그 뒤, 하루에도 몇 번씩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바빠서 얼른 답을 못할 때면 바로 전화가 울렸다. “이모 뭐 해? 빨리 카톡 보세요.” 메시지를 열면 언제 찍었는지 내 사진이 있었다. 처음에는 무척 어려워했는데 하나씩 배워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래 이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그들에게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다. 함께하다 보니 그전에 몰랐던 것들을 자연 체득하게 되었다. 내가 친구들에게서 위로를 받은 건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친구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무엇이

든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 비장애인보다 조금 늦게 갈 뿐 살아가는 데 장애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은 여러 분야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배웠다. 그림을 배우는 친구들은 캠퍼스에 색채의 마술을 부렸고 영혼을 담은 그림은 명화가 되었다. 개성이 넘친 다양한 그림으로 카페 안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구슬을 꿰어 브로치를 만드는 친구들의 눈빛은 별처럼 빛이 났다. 구슬이 장미꽃도 만들었고 별도 달도 되었다. 가죽공예 시간에는 가죽에다 직

접 염색을 했다. 광을 내기 위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문질렀다.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바늘로 꿰매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몸이 불편해 힘들어도, 못 하겠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 조력자가 되어 3주에 걸쳐 만들어진 다양한 무늬의 손가방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명품이었다.

복지관 문학 동아리에서 자그마한 책을 발간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손안에 쏙 들어온 작은 시집이었다. 친구들 모두 가슴속에 깊이 숨겨둔 불새를 한 마리씩 꺼내는 것 같았다. 비가 오면 오히려 좋다는 시를 쓴 친구가 있었다. 비가 내리면, 빗소리 때문에 울음을 들키지 않아서 좋다고 썼다.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니, 가슴에 쌓인 게 얼마나 많았으면 그런 생각을 할까.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장애인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하루하루 편견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과 다름없다. 이곳 친구들은 항상 웃었다. 마치 아무 걱정이 없는 듯이, 하지만 그 밝은 표정 속에 숨어 있는 눈물을 나는 보았다.

손발 없이도 살아내는 사람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는 시를 쓴 친구도 있었다. 어디가 좀 부족하다고 해서 미리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가슴속에 용솟음치는 열정을 그렇게 표현하는 친구들에게서 당당하게 사는 게 어떤 건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열정이 서로의 가슴으로 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바람을 맞고 건너온 시간이 시로 승화되었다. 이 세상에 시인 아닌 사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내는 인생을 노래처럼 쓰면 시詩가 되고, 긴 글로 쓰면 소설이 될 것 같았다.

“이모! 이모 나 담배 끊었어요.”

친구 같은 내게 할 말이 많은 아이들이다. 여백이 많아 솜털 구름처럼 날고 싶은 동심들이다. 내 마음도 그 동심에서 함께 날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무엇이든 배우려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했다. 그보다 더 예쁜 얼굴이 어디 있을까.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내 마음에는 환한 등불이 켜졌다.

지난겨울 함박눈이 내리던 날, 밤새 내린 눈이 발등을 덮었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고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눈발을 헤치며 들어온 친구가 카페 안이 천국이라고 말했다. 언 몸을 녹이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주위 사람들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천국이 따로 있을까, 허기진 마음을 채우고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천국이 아닐까. 몸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의 잣대에 길든다. 길을 건널 때에도 빨리 달릴 수 없어 깜박이는 신호를 그냥 보낸다. 다시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길을 건너다 적색 신호로 바뀌면 운전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식이 깔려 있음이다.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웃음을 볼 때 감동은 크다. 그에 맞춰 하나라도 더 배워보려는 친구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의 일부다. 세상의 잣대에 기

죽지 않고 차별당하지 않으며 마음속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는 곳, 복지관에는 오늘도 마음이 자유로운 영혼들의 이야기가 옹달샘 맑은 물처럼 퐁퐁 솟아오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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