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작은 도서관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이용인에 대한 나이 제한 규정은 없으나 주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들을 겨냥한 듯한 실내 인테리어가 되어져 있었습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안한 자세로 머물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는 서가에 꽂힌 책들 중 재밌어 보이는 그림책 몇 권을 가지고 와선 방바닥에 놓인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가장 먼저 들춰 본 그림책은 『인류의 변천사』였어요. ‘네안데르탈인’ 이라고 소개된 이는 한 손으론 허공을 짚고, 다른 손엔 돌로 만든 창을 들고서, 어디론가 향하는 일러스트였습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도구’를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점에서 인류의 조상 이라고 불린대요. 기껏해야 돌창이나 돌도끼를 만들어 쓰는 이들을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간의 조상’이라는 특별한 집단들로 분류한 것 입니다.
만일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 그들이 컴퓨터를 쓰고, 핸드폰을 쓰고, AI 기술이 접목된 로봇을 쓰는 등, 현생 인류를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요? 혹 ‘신의 강림’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다음으로 펼쳐든 책은 여러 동물들이 ‘공생’하는 그림책이었어요. 신기한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이 소개되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악어와 이빨 사이를 누비는 작은 새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는 눈을 반쯤은 감은 채 아주 기분이 좋아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해서는 안 될 위험한 공생의 예로 ‘하마와 옥스퍼거 새’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 옥스퍼거 새는 하마의 몸에 붙어있는 기생충은 제거해 주나 하마의 피부를 뚫고 피를 빨아먹는 흡혈새로도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마의 피부가 워낙 두꺼워 이 정도로는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 세상에서 공생이라 불릴 만한 것들은 뭐가 있을까요? 아마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그 한 예로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는 그 노력들 중에서도 인간 사회에서의 공생이 어느만큼이나 이뤄졌는지 한두 가지만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는 2001년 1월 경기도 시흥의 오이도역에서 리프트 사고로 노부부 중 아내는 목숨을 잃고 남편은 중상을 입었던 사고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장애인 단체들은 목숨을 걸고 수차례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항변과 시위와 투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코레일 측에서 1역 1동선이란 목표를 세워 각 역사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도록 하는 실천을 이끌어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라우리만큼 편리한 이동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유동 인구수가 많아 붐비며 혼란스러운 지하철 역사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 줄을 섰을 때, 가령 그 줄 속에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뒤에 서 있는 사람 중 누군가가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보고 ‘당신이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면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내가 못 타니까 나중에 타라. 난 지금 바쁘니까 빨리 가야 한다.’라며 새치기를 너무도 당당히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거 ‘하마와 옥스퍼거 새’의 동거와 비유될 수 있지요?
반대로 유동인구가 적은 수도권 지역의 역사를 이용하다 보면 이 역사는 애초에 설계 단계에서부터 계단 폭이 한껏 넓게 설계되어 역의 통로 중앙에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곤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역사에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고 게다가 승객의 안전 확보를 위한 안전문까지 설치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으니, 이미 역사 가운데 넓게 자리하고 있는 계단은 건드릴 수는 없고 궁여지책으로 그 계단을 중심으로 각 오른편과 왼편에 좁은 통로만을 사이에 둔 채 철로 이용객의 안전을 위한 안전문을 설치한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이 역시 그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야 이용할 수 있는데 과연 전동 휠체어가 그 좁은 통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는지는 볼 때마다 의문이 듭니다. 또 혹여 사람들이 몰려드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우리는 아직 ‘이태원 참사’를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역은 미리미리 이런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전동휠체어가 그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통로가 좁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때는 엘리베이터도 한낱 그림의 떡에 불과한 관상용 설치물이 되어버리겠지요? 아직 이 역사는 유동인구가 적어서 다행입니다.
이번엔 또 결이 좀 다른 이야기로 횡설수설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모 지자체에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쓰려는 글의 배경 지역이라 한번 둘러봐야겠기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곳 지자체가 내세우는 관광 코스 몇 곳을 집어넣어 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곤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그 첫 번째 계획지에 도착했건만, 아뿔싸! 그 건축물은 이미 낡아 이용객을 위한 편의 시설을 만들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해서 건물 주변엔 걷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바BAR’나 ‘난간’시설조차도 없었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그 지자체가 내세우는 그 낡음이란 한낱 ‘지자체의 얄팍한 또 하나의 상술에 불과한 핑곗거리’였지 않았나 합니다. 단지 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거지요. 실로 그 지자체가 이곳을 역사적 상징물이므로 보다 많은 이용객들에게 그 역사를 알리려고 한 것이라면 편의시설물 설치에 최선의 노력을 하려 했을 터이니까요. 암튼 그 건물은 밑에서 올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여행들이 흥미롭지 못했던 것은 당연하지요. 첫인상을 구겼으니 말입니
다. 또 다른 횡설수설을 해 볼까요?
지난해 꼭 이맘때쯤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자랑삼는 대규모의 공원에 ‘장애인들을 위한 셔틀버스로 전기차를 운행하니 많이 이용해 달라’는 홍보문구를 접했습니다. 마침 시간 여유가 있는 날이어서 아들을 데리고 가 보기로 했습니다. 도착하여 그 공원을 둘러보는 순간 ‘겨우 이따위로 해놓고 홍보는 그리 요란했나?’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화마저 나더라고요. 온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시간이지만 장애인들만은 아직 맘 놓고 기지개를 켜서는 안 된다는 환청마저도 들리는 듯해서 씁쓸했습니다.
곳곳에서 차별받는 느낌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들이고 보면 홀대받는 입장에서 ‘이만큼이나마의 복지가 이뤄진 데는 장애인들의 목숨 값도 들어있다고 하는 공치사를 좀 한다’ 해도 괜찮을 듯합니다.이런 공생 또한 하마와 옥스퍼거 새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을까요?
그런가 하면 또 조금은 결이 다른 횡설수설도 해야겠습니다. 지난여름 어느 날 있었던 일입니다. 집안일을 급히 마치고 약속 시간에 맞춰 외출을 하느라 바깥 날씨를 살피지 않았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와서야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이를 어쩌나, 집에 도로 가야 하나? 시간도 없는데….’ 하는 생각으로 주춤거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초등학생 아이들이 1층 주차장으로 들어왔습니다. 난 맨 앞의 여학생한테 “비가 많이 오니?” 하고 물었지요.
그 여학생은 모기만 한 소리로 “아니오.”라고 대답하더라구요. 그러자 맨 뒷줄의 키 큰 남학생이 “정거장까지 우산 씌워드려.” 하고 소리치는 거예요. 난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아니야, 아줌마 혼자 갈 거야.”라고 하곤 웃으며 빗속을 걸어나갔습니다.
요즘 초등학교에선 ‘장애인 인권 교육’을 시킨다더군요. 그 남학생이 ‘동정’이 아닌 ‘인지상정의 사랑’을 근거로 자신도 모르게 소리친 거라고 믿고싶어요. 왜냐면 그들은 개인주의를 특징으로하는 ‘Z세대’이거든요. 암튼 애들 덕분에 기분 좋게 빗속을 걸어나갈 수 있었어요.이게 바로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이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미래세대는 좀 더 아름다운 공생들이 많이 이뤄질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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