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산과 같아라』 이 책에서 감잣고개를 읽었다. 감자는 하얀 감자와 자주색 감자가 있다. 하얀 꽃 피는 수미감자와 보라색 꽃이 피는 조생종 감자가 있다. 감자꽃이 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뿌리에 알이 생기는데 꽃 색깔대로 감자알을 캐게 된다.
계절의 절기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가 지난 다음 감자를 캐면 탐스러운 감자를 수확할 수 있다. 그러나 감잣고개를 겪는 배고픈 소년은 감자알 크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뱃속에서 무얼 꾸물대냐?’ 빨리 넘기라는 아우성에 소년은 우선 먹어야 했다.
예쁜 알이 주렁주렁 달린 감자를 소년은 조금 더 놔두면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땟거리 때문에 캐야만 했다. 뽀얀 감자의 아까운 살점이 두껍게 깎아질세라 어머니는 칼을 사용하지 않고 숟가락을 썼다. 숟가락으로 감자를 긁으면 하얀 분이 얼굴로 튀어 깨 딱
지처럼 보였다. 얼마나 감자를 긁었으면 반달숟가락이 될까. 아마 집 집마다 하나씩 있었을 것 같다.
가난을 극복한 소년은 지금 감잣고개를 추억으로 떠올리며 수필을 쓰고 있다. 내 어릴 적 희미한 감잣고개를 여기에 반추해 봤다. 감자꽃은 알겠는데 감자 캐본 기억은 없다. 내 고향에는 밭이 작다. 그래서 식구들 먹을 만큼만 텃밭에 심었다. 막내인 내게는 밭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메뚜기 방아깨비 생각만 났다.
메뚜기는 퉁 나온 커다란 눈 때문일까 잘 뛰고, 배로 듣는 청각 도움인지 재빠르고 영리하다. 방아깨비는 색깔을 바꿔가며 위장하고 벼 잎이나 풀잎에 많이 산다. 막내가 학교 갔다 오기를 기다린 엄마는 책가방 내려놓자 간식도 없이 논에 가서 참새 쫓으라 했다. 혼자 뜨거운 햇빛에 가기 싫었고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심심했다.
참새 쫓으려면 깡통을 두드려야 했다. 엄마에게 투덜대며 논에 간 막내, 깡통은 내려놓고 메뚜기 잡고 방아깨비만 잡았다. 해가 지려 할 때쯤 새 쫓기는 끝났다. 몇 시간 동안 친구 삼아 놀아준 방아깨비와 메뚜기를 풀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갈대에 줄 끼어 논두렁에 불 피고 구워 먹었던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작가는 껍질째 장조림 하는 감자 반찬, 거기에는 영양분이 많은 이유로 껍질째 졸이는 것이라 알려줬다. 작가의 어머니는 감자전분 만들려고 썩은 감자를 독에 넣어 물로 우려내는데 감자 썩는 냄새는 고약스럽다고 했다. 냄새는 나쁘지만 거기서 얻은 전분으로 감자송편 감자전
만들어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시던 어머니 손맛을 떠올렸다. 지금은 감자송편 감자전이 별식이 되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 집 앞마당에도 우물 옆에 예쁜 집이 하나 있었다. 지금의 복권을 꿈꾸는 보물단지 인삼 집이다. 금잔디 두른 조그만 집 거기에 정성껏 엄마가 하루 두 번 물을 주셨다. 고추씨 닮은 노란 인삼 씨앗 싹트게 하기 위해서다. 노란 인삼 씨앗은 작은 눈과 머리가 예쁘게 트인다.
봄이면 인삼 모종을 한다. 눈뜬 씨앗을 건강한 놈으로 골라 다시 심기 위해 선별했다. 메싹 닮은 인삼은 합격자만 남고 뿌리가 기형으로 난발이 된 인삼은 불량으로 분리됐다. 합격된 인삼은 육 년을 기다려야 땅속에서 자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 인삼밭은 유난히 깔끔하다.
인삼을 기다리는 주인들은 온갖 정성으로 지키셨다. 밭고랑에 풀 한 포기 없고 지붕은 햇빛 가리개로 북향을 향해 갈대로 엮은 발을 얹고 검은색 망을 씌웠다.
사람을 닮았다고 인삼이라 하지만 인삼은 두릅과의 식물이라고 했다. 파란 잎새가 날카로우면서도 예쁘고 빨간 열매는 산수유를 닮았다. 불합격된 불량 인삼은 한 바가지씩 일꾼들에게 수고했다고 반찬 몫으로 줬다. 집으로 온 나머지 인삼은 살짝 삶아 콩나물 대용으로 먹었다. 그래도 인삼이 많이 남으면 쌀과 함께 누룩의 힘으로 맛있는 막걸리가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에게 하루 두 번 행복하시라고 새참 준비 간식이었다.
나무로 예쁘게 다듬은 삼발이받침을 놓고 무명으로 만든 자루에 숙성된 막걸리 재료를 바가지로 퍼부었다. 팔이 아프도록 어머니는 한 모금 더 나오라고 비트는 자루의 아픔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뽀얀 눈물이 모여 항아리로 둥지를 틀고 나면 동동주 쪽박 하나 띄워 놓았다. 할아버지 새참 때마다 푸러 가면 쪽 바가지는 양껏 담아줬다.
할아버지는 막걸리 마셔서 취하고, 손녀와 증손녀는 인삼 술지게미 달달한 맛에 취했다. 조카와 함께 주량도 없이 손가락 가는 대로 맘껏 퍼먹어댔다. 심장이 뛰고 숨이 할딱거렸다. 막걸리 지게미를 먹고 취한 조카딸과 고모는 손가락 끝에 맥이 풀려 일어나지 못하고 대청마루에 서 곤히 잠들곤 했다.
오늘은 백발 머리 두 사람 나와 한 살 차이 조카딸과 어려서 함께 모주 먹던 얘기로 전화 통화하며 추억 찾아 한바탕 깔깔 웃어댔다. 인삼 모주에 취했던 생각을 꺼내 추억 속으로 빠지다 보니, 감잣고개 소년이 생각났다. 소년을 우연히라도 만나면 거나하게 낮술 한 잔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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