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 정 이
낯선 구름이 지나가다가
뒤틀린 나를 보고 처마 끝에 걸려
목이 쉬도록 울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름으로 치장을 한 어머니
땀 밴 속적삼 한 벌씩 벗어
바람에게 전해주며
나의 슬픈 다리를
만져주곤 했습니다.
외양간
늙은 암소의 울음도 사라지고
벼는 끝내 아버지의 손바닥에서
손금처럼 익지 못하고
남의 식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서러워 빈 쭉정이가 된 가슴
고인 물처럼 말라붙었고
갈가리 인화된 조각들은
울대 깊은 곳에서
묵어 자빠지고 맙니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가슴 한복판에는 멍울이
웃자라고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인숭무레기* 같은 난,
힘차게 웃으며 돌아서서
슬픈 다리를 바라보다가
젖빛 유골함을 꼭 품었습니다.
* 어리석어 사리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
아버지가 주신 지팡이
소년 시절,
열병으로 쓰러져
한쪽 편을 쓰지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일어나지 못하는
막내아들 일어나라고
손수 깎아 만드신 명아주 지팡이
머리맡에 두셨습니다.
당신은
저 먼 하늘의 별이 되셨어도
버리지 못하고
따스한 사랑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 곁으로 가는 날
그 지팡이 짚고 살금살금 걸어가
무릎 꿇고 울겠습니다.
김장김치
아픈 상처
몇 개씩 가진 사람들이 모여
첫눈처럼 순결한 속살을
갖은 양념으로
채색하고 버무렸습니다.
누구는
사랑을 몇 바가지 넣었고
누구는
웃음을 몇 사발 넣어
행복의 간을 맞추어 담갔습니다.
돼지 수육을
갓 담은 김장김치에 싸서
옴팡지게 된장을 발라
옴쏙 씹는 맛에
사랑과 행복은 군무를 추었답니다.
가지고 온 김장김치를
외로움의 각질로 뒤덮인
장려|시 부문 215
저 주름진 이웃 할머니에게
한 포기 드렸더니
그렁그렁 눈물 고였습니다.
칠순 잔치와 손녀
그녀의 노랫소리가 식당 홀에 울려 퍼졌습니다.
음식을 즐기고 있던 많은 축하객이 놀라워했습니다.
한 소절이 끝났을 때 객석에서는
색조감 넘치는 놀라움으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풍요롭고 찰지게 울려 퍼졌습니다.
노래를 처음 시작할 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자신감과 열정만이 그의 주위를 가득 채웠습니다.
마치 블랙홀이나 진공상태가 된 것처럼 모두가
그녀에게 몰입했습니다.
폭넓은 음폭은 가온 음자리를 넘나들었고
셈여림의 조화로움이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청아하게 2절의 마지막 소절이 끝났을 때
누군가는 거침없이 앙코르를 외쳤고
모두가 기립박수를 쏟아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그녀의 할머니만
굵은 눈물방울을 툭툭 흘리고 있었지만,
그 눈물 속에는 기쁨과 놀라움 그리고
작은 원망이 들어 있는 대견함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우리 손녀 최고라며 연신 손뼉을 쳤고
선천성 시각장애인인 손녀의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을 췄습니다.
1년 후, 손녀가 음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할머니는 항라저고리 소맷귀에 또,
자랑스러움으로 물들여진 눈물을 찍어내곤 했습니다.
나를 위한 너의 그림
뜨는 황소 같은 거친 비바람에도
꿋꿋이 깊은 땅속에
심장부터 비집고 들어가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있는
너무나도 아련한
한 그루의 나무를 닮고 싶어
머리부터 바위에 부딪혀
빨간 피를 토해 내어 보았지만
아픔은 먹구름이 되어 하늘을 가리고 만다.
온갖
비바람이 몰아쳐도
꺾이지 않는 하늘 버팀목으로 살아가는
노란빛의 나무 세상에서
이리저리 세월의 발길질에
차이면 춤추고 업신여기면 노래하며
넘어지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어서
한쪽을 못 쓰는 몸이지만
태양 속에서 춤추는 무용수가 되어 버렸다.
살아온 인생
험난하고 춤추는 꼭두각시 같은 삶이지만
그래도 은은한 달빛 한줄기
오염을 못 이겨 물 밖으로 나온
잉어의 눈빛에
비린 서광이 비춰 주길 바라며
나를 위한 너의 그림을 한없이 그린다.
이제부터
거친 세월 속에서 날아오는
돌을 받아 씹어 삼키며
좌절하지 않으리
내 앞에는 너무나 구성진 하늘의 노랫소리가 들려 온다.
눈 감고 쫓아가리라
한없이 넓은 세상에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리라.
세상을 향해 비틀거리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전진하며 살아가는
외로운 고라니의 삶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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