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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2026 민들레 문학상 장려

엄마 외 4편

곽현숙

엄 마

질식할 것 같은 짙은 향기에
온몸을 감싸고
새하얀 꽃바다 속에
난생처음 누리는 호사를 누리며
엄마가 누워있다

가여운 새끼들 한 끼라도 굶길세라
험한 세상 까막눈 되어 환히 보지 못할세라
늘상 분주하던 팔다리를 곱게 모으고
수줍은 새색시처럼 엄마가 누워있다

손톱 발톱이 자라기도 전에 닳아버리는
밤을 낮처럼 인생을 늘려 살더니
가는 길이 그래서
이토록 이른가 보다

긴긴 외로움과 서러움이
쌓이고 쌓여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되고
말하지 못하는 그리움이 터져

지쳐버린 한 평생
겨우 한 갑자를 보내고
엄마가 훨훨 떠나갔다

한 평 황토에
평안하다는 듯 빼꼼 고개 내민 네 잎 토끼풀
명치를 막고 있던 눈물이
그제야 솟구치듯 쏟아진다

엄마 안녕 영영 안녕
이 풍진세상 견디고 버티느라 고생했으니
이제 그만 편안히 영면하소서!

엄마
벌써부터 보고 싶다.


중환자실 단상 (斷想)

알 수 없는 주삿바늘이
팔다리에 주렁주렁 꽂혀있으니
박제된 나비처럼 내 몸이 초라하다
눈도 못 뜬 채 누워 있으니
온통 억눌린 감각 속에서
머릿속만 온통 분주하다
질서 어린 부산한 발걸음
다급한 부름 속에
억눌린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또 가여운 영혼 하나 외롭게 떠나나 보다
허공을 맴도는 저승 차사의 차가운 숨결이
나를 스쳐 가는지
정수리부터 차가워지는 몸은
떨리는 걸 멈추지 못한다
삼도천 냇가를 맴돌
강 건너 피안을 넘겨다보고 있노라니
귓전에 애절한 낯익은 울음소리
내 발목을 잡고 놓지 않는구나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억지로 억지로 가슴 아래 내려보내며

천근 같던 눈꺼풀을 밀어 올리니
눈물콧물 얼룩진 내 새끼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돌아온 세상은 어제처럼 변함이 없건만
다시 돌아온 나는 무거운 새로움을 얻었다


혈영血詠

– 혈육을 노래하다

지금 옷깃 한번 스치는 인연은
전생의 수천 번의 만남의 결과라던데
천륜으로 이어진 우리는
심연보다 더 깊은 맺음이 아니겠느냐
너를 품고
치우친 심장 빈 곳의 허전함이
비로소 충만하게 차오르고
설렘과 기쁨으로 기다리는 열 달
생살이 찢기고 뼈가 뒤틀리는 고통은
장미꽃잎보다 부드러운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환희가 되어 버렸느니
그날 이후
나의 모든 날은 너로 가득 차
하루라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나니
혹여 열정이 지나치어
나의 기대가 부담이 되고
나의 격려가 질책으로 들릴지라도
너는 나의 영원한 기쁨일지니
이제 너는 날개를 활짝 펴고
저 푸른 창공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올라 너의 꿈을 꾸거라
날다가 날다가 마침내
세사에 지치고 외로울 때
주저하지 말고 오너라
항상 이 자리에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서 있을 터이니.


연 가

홍매화 눈부시던 그 봄
흔들리는 족두리에
벅찬 기대로 활짝 열린
꽃가마에 수줍은 발을 내딛던
꽃보다 더 고았던 열아홉
원앙금침 색도 선명하고
부르는 이름이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데
그대 바람처럼 홀연히 떠나버리니
나는 청상의 낙인을 달고
올망졸망 자식들 거두고 지키며
버티고 견뎌낸 반평생
모진 세상 두려움을
긴 한숨으로 삼키고
야멸찬 멸시를
가슴으로 받아내며
밤마다 적신 눈물이
황하보다 깊고 붉었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하자던 약속은
나 홀로 지켜 백발이 되었으니
그대는 아직도 영원한 청년이구려

그대와의 꿈결 같던 십 년을
그대를 지키는 삼십 년으로 갚았으니
이제
새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한줌 숨결에 기대어
그리운 그대 찾아가려니
나를 잊지 말고 기다리시오.


옛 집

높은 가지 끝에
전등처럼 매달린 홍시가 길을 밝히는
고샅길 돌고 돌아 구부러진 모퉁이 길
멀리 보이는 사립문이 열리기도 전에
먼저 보이던
어머니의 하얀 백발.

노랗게 물들어 고운 자태 뽐내던
탱자나무 울타리도
여름날 창 밑 파초 잎에
떨어지던 빗소리도 잊혀지고,

오순도순 도란거리던 속삭임도
환희처럼 터지던 웃음소리도 사라졌는데

온기 한 점 남지 않은
빈 집을 지키는
마당가의 하얀 목련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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