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그에게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문수는 그것이 싫었다. 같 은 얼굴이라는 것은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관사 로 삼십오 년을 살았다. 레일 위에서는 같은 얼굴이 가장 위험했다. 진 동이 사라진 듯 느껴질 때, 오히려 어딘가가 어긋나 있는 경우가 많았 다. 그는 균열을 냄새처럼 맡는 사람이었다.
아들이 죽던 날도 강은 고요했다.
그날은 초여름이었다. 공사 현장은 강의 제방을 확장하는 작업 중이 었다. 도시가 커지면서 강은 더 곧게, 더 단단하게 정리되어야 했다. 흙 은 트럭에 실려 나갔고, 콘크리트는 물길을 눌렀다. 아들은 현장 관리 보조로 일하고 있었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다.
사고는 갑작스러웠다. 비가 예보보다 빨리 쏟아졌다. 임시로 쌓아 둔 흙더미가 물을 머금고 무너졌다. 무너진 것은 흙이었지만, 그 아래에는 사람이 있었다. 구조는 늦었다. 강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흐르고 있었 다.
이문수는 그날 이후 강을 믿지 않았다. 강은 죽음을 숨기는 능력이 있 다고 생각했다. 수면은 언제나 반짝였고, 사람들은 그 위를 걸었다. 누구도 아래를 보지 않았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는 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분 노였다. 강을 노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분노는 모양을 잃 었다. 남은 것은 습관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 강은 여전히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가끔 난간을 두드렸다. 쇠의 진동을 손바닥으로 느꼈다. 기차의 진동과는 달랐다. 이 강은 너무 조용했다. 조용한 것은 위험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그는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흙과 물이 뒤섞 인 냄새. 그날 장례식장에서 풍기던 눅눅한 향. 그는 잠시 멈춰 섰다. 강 이 다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 다. 새벽마다 조금씩 짙어졌다. 갈대 사이에서, 다리 아래에서, 돌 틈에 서 스며 나왔다. 마치 바닥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이문수는 집으로 돌아와 아들의 사진을 꺼냈다. 작업복을 입은 채 웃 고 있는 얼굴. “괜찮다.”고 말하던 목소리. 그는 사진을 내려놓고 다시 강으로 나갔다. 냄새는 그를 부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일부러 강변 공사 구간을 찾아갔다. 안전 펜스가 설치되 어 있었고, 안내판에는 ‘환경 개선 사업’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는 한참을 서 있었다. 개선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들렸다. 무엇을 개선 한다는 것인지, 무엇을 더 나아지게 한다는 것인지.
그는 펜스 너머를 바라보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닥을 보라.” 그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냄새는 이제 강변을 넘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왔다. 새벽에 창문을 열면 은근히 스며들었다. 이문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는 냄새 속에서 층을 읽으려 했다. 썩은 풀 냄새, 오래된 흙 냄새, 막힌 물 냄새. 그것은 단순한 악취가 아니었다. 시간이 썩는 냄새였다.
그는 마침내 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의 젊은 목소리는 정 중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 말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이 아무것도 확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철도에서 “확인해 보겠습니 다.”는 위험 신호였다. 아직 아무 조치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 다.
이문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는 강변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같은 장소를 매일 같은 시간에 찍었다. 수면의 색, 갈대의 기 울기, 물고기의 움직임. 그리고 냄새를 기록했다. 날짜와 함께, 농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었다. ‘오늘은 장례식장’ ‘오늘은 젖은 지하실’ ‘오 늘은 타지 못한 장작’.
그의 기록은 점점 두꺼워졌다. 종이 위에 쌓인 단어들은 강의 바닥처 럼 층을 이루었다.
그러던 날, 그는 조깅하던 젊은 여자와 다시 마주쳤다. 그녀는 말했다. “요즘 애들이 학교에서 토한다네요.” 그 말에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 았다. 냄새가 아이들에게까지 갔다는 뜻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피켓을 들었다. ‘강의 바닥을 조사하라.’ 손이 떨렸다. 그는 외치는 대신 서 있었다. 누군가 사진을 찍었고, 그의 얼굴이 온라 인에 올라갔다. 댓글이 달렸다. ‘예민한 노인’ ‘과장된 주장’ ‘그래도 뭔가 이상하긴 하다.’
이문수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강을 노려보고 있었다. 강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강의 바닥이 갈라지며 검은 층이 드러났 다. 그 틈 사이로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얼굴은 곧 진흙에 덮 였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깨어났을 때, 창밖에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냄새가 방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알았다. 이번에는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을.
강은 오래 흘렀고, 오래 숨겨왔다. 그러나 바닥은 언젠가 드러난다. 그 는 그 순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냄새로 알고 있었다.
시청 본관 7층 회의실은 창이 넓었지만 공기는 탁했다. 창밖으로 강 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언제나 맑았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인쇄된 보고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하천 퇴적물 조사 중간 검토 보고’라고 적혀 있었다. 날짜는 어제였다. 정훈은 그 날짜가 벌써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과장은 안경을 벗어 닦으며 말했다.
“민원이 늘고 있습니다. 언론도 움직이고 있고요.”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기준치를 초과하지는 않았습니다.”
정훈은 말없이 보고서 14쪽을 펼쳤다. 그래프의 선은 완만했다. 그러 나 그는 그 완만함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수치는 일정한 속도로 상승하 고 있었다. 기준치는 아직 넘지 않았다. 하지만 기준치는 항상 늦게 도 착한다.
“임계점 근접이라는 표현은 과합니다.” 국장이 입을 열었다.
“그 단어는 위험을 선언하는 겁니다. 선언은 책임을 동반합니다.”
정훈은 시선을 내렸다. 3년 전 다른 하천에서 같은 말을 들었다. 그는 그때 문장을 고쳤다. 그 결과를 알고 있다. 여름, 녹조, 폐사, 사과문. 그 모든 것이 한 단어의 삭제에서 시작되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럼 어떤 표현이 적절하다고 보십니까.” 정훈이 물었다.
“지속적 관찰 필요. 관리 강화 검토.” 국장은 차분히 말했다.
“위기라는 말은 아직 이릅니다.”
회의는 느리게 흘렀다. 문장 하나를 두고 십 분이 지나갔다. ‘임계점’ 은 ‘주의 단계’로 바뀌었다. ‘즉각적 조치’는 ‘단계적 대응’으로 수정되었 다. ‘긴급 예산 재배정’은 ‘추가 예산 확보 방안 모색’이 되었다. 단어가 부드러워질수록 보고서는 온순해졌다. 온순해질수록 책임은 희미해졌 다.
정훈은 노트에 메모를 했다. ‘시간을 늘리는 언어’. 그는 그것이 행정 의 기술임을 알고 있었다. 위기를 분산시키고, 문제를 지연시키는 기술. 시간은 가장 큰 완충재였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시장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시장님께서 언론 대응 문구를 요청하십니다.” 과장은 곧바로 문장을 만들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 특이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시민 불편 최소 화를 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습니다.”
정훈은 그 문장을 들으며 강의 바닥을 떠올렸다. 특이 사항이 없다는 말은, 특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회의가 끝났지만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보고서는 수정되었고, 결재선은 길어졌다. 전자결재 시스템 속에서 문서는 위로, 다시 아래로 오 갔다. 코멘트가 달렸다. ‘표현 완화 요망’ ‘근거 자료 보강’ ‘수치 재확인’. 시간은 늘어졌다. 그 사이 냄새는 더 멀리 퍼지고 있었다.
정훈은 저녁 무렵 혼자 사무실에 남았다. 그는 원본 파일을 열었다. 수 정 전 버전. 거기에는 ‘임계점 근접’이라는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커서를 그 문장 위에 올려놓았다. 삭제할 수도, 남겨둘 수도 있었 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는 휴대폰 을 확인했다. 강변 인근 학교에서 학생 여러 명이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 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속보다.
그는 원본 파일을 복사했다. 그리고 별도의 문서를 열었다. 거기에 수 정 전 문장을 그대로 옮겼다. 수치와 그래프, 사진까지 첨부했다. 제목 은 달지 않았다. 대신 단 한 줄을 썼다.
‘행정적 판단과 별개로 과학적 소견을 보고함.’
그는 그것을 내부 감사 시스템과 외부 환경연구원에 동시에 발송했 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는 알았다. 이것은 단순한 보고가 아니 라 경로 이탈이라는 것을. 조직은 경로를 벗어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 는다.
다음 날 아침, 시청은 소란스러웠다. 언론이 자료를 입수했다. ‘임계점 근접’이라는 단어가 기사 제목에 올랐다. 긴급 브리핑이 열렸다. 국장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조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정훈은 호출되었다.
“왜 별도 보고를 했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말은 짧았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그 사이 도시에서는 냄새가 또 다른 국면으로 번지고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는 두통과 구토를 호소하 는 환자가 늘었다. 상가 주인들은 매출 감소를 호소했다. SNS에서는 ‘강 독성’이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언어는 이제 부드럽지 않 았다. ‘은폐’ ‘무능’ ‘책임’.
시장은 긴급 준설을 승인했다. 중장비가 강으로 들어왔다. 바닥이 뒤 집혔다. 검은 진흙이 수면 위로 솟구쳤다. 악취는 일시적으로 폭발하듯 퍼졌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강변을 오갔다. 뉴스 화면에는 탁해진 강 이 연일 등장했다.
이문수는 병원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화면 속 강은 처 음으로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냄새는 여 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보이는구나.”
그러나 드러남은 항상 정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준설 과정에서 예 상치 못한 가스가 대량 방출되었다. 인근 지역에 일시적 대피령이 내려 졌다. 비난은 더 거세졌다. 왜 미리 조치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쏟아졌 다.
정훈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절차 위반, 보고 체계 무시. 그는 고 개를 숙이지 않았다. “문장은 사실이어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 말은 기록으로 남았다. 그러나 조직은 그를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형식은 자발적이었다. 그러나 선택은 강제에 가까 웠다.
몇 달이 지나 강은 다시 맑아 보였다. 냄새는 줄었다. 사람들은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무언가는 달라져 있었다. 강을 지날 때, 사 람들은 잠시 멈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문수는 다시 난간에 섰다. 바람이 불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 다.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바닥은 완 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드러났고, 기록되었고, 기억되었다 는 것을.
그는 천천히 강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진흙이 덮지 않았다. 그는 난간을 두드렸다. 미세한 진동이 손 바닥에 전해졌다.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정훈은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 보조로 일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기준치는 항상 늦게 도착합니다.” 학생들은 조용히 들었다. 그는 더 이상 보고서를 고치지 않았다. 대신 층을 설명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쌓이는 방식에 대해.
강은 배경이 아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의식했다. 물 위의 반짝 임만이 아니라, 그 아래의 어둠까지.
도시는 다시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그 평온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한 번 드러난 바닥은 완전히 잊히지 않는다. 선택은 되돌릴 수 없고, 드러 난 시간은 다시 묻히지 않는다.
강은 말이 없었다. 다만 흘렀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오래된 것들이 천천히 다른 모양으로 바뀌고 있었다.
준설이 끝났다는 발표가 있던 날, 강은 오히려 더 낯설어 보였다. 수면 은 전보다 맑았지만 색이 옅어졌다. 바닥을 긁어낸 자리마다 물의 흐름 이 달라졌고, 둔치의 돌들은 엉성하게 드러났다. 강은 한 번 뒤집힌 몸처럼 어색하게 누워 있었다.
도시는 서서히 냄새에서 벗어나는 듯했으나,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 다. 사람들은 코를 막는 대신, 먼저 강을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 다. 다리를 건너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들은 “여기 서 또 냄새 나?”라고 묻곤 했다.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문수는 퇴원한 뒤에도 새벽 산책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걸음은 느려졌다. 그는 예전처럼 강을 노려보지 않았다. 대신 오래 바라보았다. 마치 무엇이 남았는지 확인하듯이. 준설된 구간에서는 물빛이 조금 달 랐다. 그러나 그 아래에 아직 긁히지 않은 구간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 고 있었다. 바닥은 한 번에 모두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의 사고 현장 근처에 오래 서 있었다. 콘크리트 제방은 새로 보수되어 있었다. 안내판에는 ‘안전 강화 완료’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 문구를 읽고 천천히 웃었다. 완료라는 말은 늘 과장되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완료는 종결을 의미하지만, 강에는 종결이 없다.
그는 가방에서 낡은 수첩을 꺼냈다. 냄새를 기록하던 수첩이었다. 마 지막 장에 이렇게 적었다. ‘냄새는 줄었다. 그러나 기억은 남았다.’ 그리 고 덧붙였다. ‘이제는 내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누군가는 맡을 것이다.’
도시의 학교에서는 환경 수업이 늘어났다. 강의 사례가 교과서에 실 렸다. 사진 속 검은 퇴적물은 선명했고, 옆에는 작은 글씨로 ‘조기 경고 체계의 중요성’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은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나 아이들 중 몇은 그해 여름 두통으로 결석했던 기억을 더 선명하 게 가지고 있었다.
병원 응급실의 의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환경적 요인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단정할 수 없다는 문장은 여전히 도시를 맴돌았다. 단정은 늘 늦게 도착했다.
상가 주인들은 매출 회복을 이야기하면서도, 창문을 열기 전에 잠 시 머뭇거렸다. 냄새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습관처럼 남았다. SNS에서는 사건을 기억하는 게시물이 주기적으로 올라왔다. ‘그때를 잊지 말자’는 문장 아래, 강의 사진이 덧붙었다. 반짝이는 수면과, 그 아 래를 설명하는 긴 글.
정훈은 대학 강의실에서 한 학기를 마쳤다. 그는 학생들에게 보고서 한 장을 나누어주었다. 수정 전과 수정 후의 문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 다. 학생들은 차이를 읽었다. ‘임계점 근접’과 ‘주의 단계’. 그는 물었다.
“어느 문장이 더 위험해 보입니까.” 학생들은 잠시 망설였다. 정훈이 말했다.
“위험해 보이는 문장이 위험한 건 아닙니다. 위험을 지연시키는 문장 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한 학생이 다가와 물었다.
“그때 선생님은 왜 결국 그 문장을 지우지 않으셨나요.” 정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지우면, 내가 먼저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는 시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작은 연구 모임을 만들었다. 강 과 도시를 주제로 한 세미나였다. 참여자는 많지 않았지만, 토론은 길었 다. 그는 더 이상 결재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때로 밤이 되면, 회의실의 공기와 수정되던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는 그 기억을 밀어내 지 않았다. 그것 또한 바닥이라고 생각했다.
이문수의 건강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호흡은 예전보다 짧아졌 고, 걸음은 느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새벽에 강을 찾았다. 어느 날 그는 어린 손자가 따라 나왔다. 손자는 난간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 다.
“할아버지, 강 밑에는 뭐가 있어?” 이문수는 한참을 생각했다. “시간이 있다.”
그가 말했다. “시간이 뭐야?”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들.”
손자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물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눈에는 수면만이 반짝였다.
그해 겨울, 강은 얼지 않았다. 물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준설된 바 닥 위로 새로운 침전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주 얇은 층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훈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문수도 알고 있었다. 바닥은 늘 다시 시작한다.
도시는 사건을 기억하면서도 동시에 잊어갔다. 새로운 뉴스가 등장 했고, 새로운 민원이 접수되었다. 강은 다시 배경으로 물러나는 듯 보였 다. 그러나 완전히 그렇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널 때 잠시 멈 추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그 짧은 멈춤이 남았다.
이문수는 어느 새벽, 평소보다 더 오래 난간에 기대 있었다. 숨이 가빴 다. 강은 잔잔했고, 바람은 약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냄새는 거의 느껴 지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공기가 폐를 채웠다.
그는 속으로 말했다. “이제는 숨겨도 다 알 거다.” 그 말은 강에게 하는 말인지, 도시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며칠 뒤, 그는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이번에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창밖으로 강이 보이지 않는 병실이었다. 그는 손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강을 그냥 보지 말고, 아래도 생각해라.” 손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의 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문수의 장례식 날, 강은 맑았다. 바람이 약하게 불었다. 조문객 중에 는 조깅하던 그 젊은 여자도 있었다. 정훈도 조용히 다녀갔다. 그는 영 정 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사진 속 이문수의 얼굴은 평온했다.
장례가 끝난 뒤, 정훈은 혼자 강변으로 갔다. 난간에 손을 얹었다. 차 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았다. 그는 가볍게 두드렸다. 미세한 진동이 전 해졌다. 그는 그 진동을 오래 느꼈다.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준설 이후의 상처는 옅어졌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다시 많아졌다. 그러나 강은 더 이상 완전히 투명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바닥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훈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냄새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알 고 있었다. 바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드러났다가, 다시 쌓 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드러난 적이 있다는 사실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난간에서 손을 떼고 걸음을 옮겼다. 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흘렀다. 그 흐름 위에서 사람들은 다시 일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상 속 어딘가에, 한 번 드러난 바닥의 기억이 얇게 깔려 있었다.
그 기억은 냄새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지만, 완전히 없어지 지도 않았다. 도시는 그것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강은 여전히 배경이 었지만, 이제는 질문을 품은 배경이었다.
그리고 질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정훈은 그날 이후로도 몇 번이나 강을 찾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니었고, 강의 수질 보고서를 결재할 권한도 없 었다. 그럼에도 강가에 서면 여전히 어딘가에 속해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떠난 자리의 그림자가 물 위에 남아 있는 것처럼.
봄이 오자 강변에는 다시 축제가 열렸다. 무대가 세워지고, 푸드트럭 이 줄지어 섰다. 아이들은 풍선을 들고 뛰어다녔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우리 도시의 자랑, 깨끗한 강!”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정훈은 군중 속에서 그 문장을 들었다. 박수 소리가 물결처럼 번졌다. 그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개를 젓지도 않았다. 다만 그 문 장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깨끗한’이라는 형용사가 통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문장이 잘려 나갔는지를.
무대 뒤편에서는 시청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중 몇은 정훈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인사는 짧았고, 대화는 길지 않았다. 서로가 알고 있는 말은 많았지만, 꺼낼 수 있는 말은 적었다.
그 무렵, 강 상류에서 작은 공장 하나가 문을 닫았다. 폐수 처리 비용 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역 경제에 타격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일부 상인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우리만 손해 아니냐.” 도 시의 언어는 다시 갈라지기 시작했다. 안전과 생계, 원칙과 유예, 책임 과 현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당겼다.
정훈은 신문을 접으며 생각했다. 선택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흔적 을 남기지 않는다. 준설은 강을 뒤집었고, 공장은 문을 닫았고, 누군가 는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병원에 덜 가게 되었고, 누군가는 아이를 안고 강변을 다시 걷게 되었다. 손익은 표로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천천히 드러났다.
여름이 되자 강물은 다시 불어났다. 폭우가 며칠 이어졌고, 상류에서 흙탕물이 내려왔다. 준설된 바닥 위에 진흙이 얇게 덮였다. 사람들은 불 안한 눈으로 뉴스를 지켜보았다. ‘또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 다. 정훈의 휴대전화에도 메시지가 왔다. 예전 동료였다.
“혹시 이번에 문제 생기면, 인터뷰 좀 해줄 수 있습니까.”
정훈은 답장을 바로 보내지 않았다. 창밖에서 빗소리가 이어졌다. 그 는 책상 위에 놓인 오래된 보고서 사본을 펼쳤다. 임계점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그 단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한때는 이 문장을 지키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문장 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결국 짧게 답했다. “상황을 보고 이야기합시다.”
폭우는 사흘 만에 그쳤다. 강은 범람하지 않았다. 수치는 기준치를 넘 지 않았다. 언론은 안도의 논조로 보도했다. ‘선제적 조치의 효과’ 그 문 장은 칭찬처럼 들렸다. 정훈은 씁쓸하게 웃었다. 선제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쉽게 쓰이는 것을 보며, 그는 시간의 속도를 생각했다. 위험이 드러날 때는 느렸고, 안심을 말할 때는 빨랐다.
그해 가을, 손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이 끝난 날, 아이는 이 문수가 남긴 수첩을 들고 와 정훈에게 보여주었다. 장례식에서 가족이 정리하다가 정훈에게 전해준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이거 꼭 읽어보래요.”
정훈은 수첩을 펼쳤다. 날짜와 시간, 바람의 방향, 냄새의 강도, 그리 고 짧은 문장들이 빼곡했다. 어떤 날에는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오늘 은 아무 냄새도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정훈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는 수첩을 아이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이건 네가 가지고 있어라.”
“왜요?”
“기록은 이어지는 거니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기보다는, 어른의 말을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 태도 속에 작은 씨앗이 심기는 것을 정훈은 느꼈 다.
몇 해가 더 흘렀다. 강은 겉으로 보기에 평온했다. 사람들은 다시 일상 에 몰두했고, 냄새 사건은 교과서의 한 단락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도 시의 예산안에는 매년 ‘하천 바닥 모니터링’ 항목이 빠지지 않았다. 회의 록에는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라는 문장이 반복되었다. 과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행정 문장 속으로 스며들었다.
정훈은 머리에 흰머리가 늘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묻는 질문도 달라졌다. 그는 이제 단순히 위험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선택 이후 의 시간을 이야기했다. “결정은 순간이지만, 여파는 길다.” 학생들은 그 말을 적었다. 누군가는 깊이 새겼고, 누군가는 시험 범위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문장은 또 다른 시간으로 흘러갔다.
어느 늦은 오후, 정훈은 혼자 강가를 걸었다. 햇빛이 낮게 기울어 물 위에 길게 번졌다. 그는 난간에 기대지 않았다. 대신 둔치에 내려가 흙 을 한 줌 집어 들었다. 흙은 부드러웠다.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흘러내 렸다.
그는 생각했다. 바닥은 단지 강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게도 바닥이 있다. 한 번 드러난 바닥은 다시 덮을 수는 있어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자신이 선택했던 그날의 결재도, 이문수가 새벽마다 맡았던 냄새 도, 도시가 한동안 숨을 참았던 기억도 모두 어디엔가 남아 있다.
강 위로 바람이 스쳤다. 물결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저녁이었다. 그러나 정훈은 알고 있었다. 평온은 결과가 아니 라 과정이라는 것을. 바닥은 늘 시간을 쌓고, 사람은 그 위를 걷는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강은 여전히 흘렀고, 도시는 그 곁에서 숨 쉬었다. 해결은 없었다. 다만 되돌릴 수 없는 변화 가, 조용히 일상의 표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심사평
고독했을 시간과 열정에 경외심을
심사를 하면서는 혹시 나의 시선이 부족하거나 이해력이 미숙하여 좋
은 작품을 놓칠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럼에도 필자의 고독했을 시간
과 열정에 경외심이 든다. 작품이 좋든 나쁘든 글에는 필자의 고민과 노
력이 고스란히 배었을 테니 말이다.
올해 본심에 올린 작품은 동화인 「참새와 허수아비」, 그리고 소설 2편
이었다. 「바닥은 오래 간다」와 「꼴랑지가 없오!」
「꼴랑지가 없오!」는 문법이 틀린 데와 반복되는 내용이 있지만 그것
몇 가지만 고치면 아주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구수한
사투리와 해학적인 설정 그리고 이야기 진행이 재미있었다. 우선 내가
박 사장의 프라이드이자 재산인 개를 물어뜯고 싶다면, 나와 박 사장 간
에 있었던 개인적인 갈등 요소가 뚜렷해야 한다. 개가 나만 보면 짖듯이
박 사장 또한 내게 무시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무시하는
걸 박 사장 면전에서는 참았지만 개에게라도 복수할 근거가 된다. 이 글
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내가 정말로 그 개를 물었는지 아닌지 헷갈리
게 환상적으로 처리한 부분이다.
동화 「참새와 허수아비」는 말하지 않은 여백이 더 좋은 작품이다. 움
직일 수도 없고 말을 듣기만 하는 허수아비를 좋아하는 참새 초롱이. 둘
의 관계는 사람의 어떤 관계를 대변하면서 또한 사람은 서로에게 어떻
게 맞춰지는지를 보여준다. 혹은 낡고 해진 허수아비의 옷자락 하나에
대해 사람과 비유하여, 쓸모의 문제를 제기한다. 다양한 눈으로 세상을
심사평│소설·동화 부문 226
보자는 말 같아서 여운이 남는 글이다.
「바닥은 오래 간다」는 어떤 인물이 아니라 江이라는 장소를 주인공으
로 한 것이 좋다. 강의 제방 공사를 하다가 잃은 아들로 인해 이문수는
강을 노려보다가 수질이 나빠진 것을 눈치챈다. 그래서 피켓을 들고 일
인 시위를 하는 등의 일로 시청은 발칵 뒤집어졌다. 여기서 시청의 담당
직원인 정훈이 등장한다. 이문수가 강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다면 정훈은
지금까지처럼 문제를 덮는 일을 거부했다. 사람들이 더 다치지 않게 하
기 위해 둘의 노력이 결실을 봤지만 그건 임시적이었다. 강바닥에는 다
시 독소를 품은 침전물이 다시 쌓이고 사람들의 이기적인 바닥도 덮이
게 되었다는 내용의 글. 강이라는 장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글이라는 점도 좋았다.
모든 응모자분께 감사를 전하며 다음 글에 대한 기대감도 가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심사 이근자 소설가(글), 이민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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