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말>
이 소설은 한 인간의 성장담입니다.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쓰인 루시드 드림은 필자가 새로이 창안한 개념이 아니라,
일찍이 1822년 프랑스에서부터 도입된 일반적인 개념입니다.
루시드 드림이 스스로 꿈인 걸 알면서 꾸는 꿈, 즉 자각몽을 일컫는다는 것은 널
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필자는 루시드 드림의 과학적 원리를 면밀히 이해하기 위하여 온라인상의 각종
e-book과 문헌을 참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소설을 문학으로 유효하게 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묘사를 하는
데 있어서는 정설과는 전혀 다른 설정을 곳곳에 부여하였습니다.
아울러 장애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전적으로 필자의 상상력을 토대로 만든 허구
의 이야기임을 알립니다.
<1> 방
― 1월이 왔다. 빌어먹을 1월이.
나는 나이 마흔의 장애인이다. 휠체어 없이는 홀로의 힘으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다. 하여 내 녹슨 몸이 매일같이 자리해 있는 이 침대와 골
방이 곧 나의 세계다. 골방에 갇혀 지내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암막 커튼을 친 채로 어둡게 잠에 들었다가 깨었을 때 보이는 숫자 1의
시침이 오후 1시인지 새벽 1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도 있다.
혼자서는 문턱을 하나 넘는 것도 버거운 일이니, 침대 끝에 걸터앉아
간신히 창문을 열어보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이자 소통구다. 물론 창문
을 통해 내게 허락되는 건 늘 똑같은 풍경뿐이다. 신경질적으로 묶여지
고 펼쳐져 있는 제 마음대로의 전신주들. 아직도 저런 지붕이 있구나 싶
은, 동떨어진 옛 시대의 집들. 구멍가게 평상 위에서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그저 온종일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몇몇의 노인들. 그리고 이 가
난한 동네에도 기어코 들어서서 저 높이 우뚝 서 있는 빨간 십자가까지.
모든 게 똑같다.
하루 한두 번쯤 창문을 열어보는 건 환기를 핑계 삼아 하는 일이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일종의 생존신고이기도 하다. 차고 더운 바람의 온도
와 습하고 메마른 공기의 질감으로 계절을 감각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잠에서 깬 오늘 이 시간, 바람은 차고 공기는 메마르다. 그래, 1월이 왔
다. 빌어먹을 1월이.
― 그 새끼는 사람이 아니다.
1월은 많은 일이 일어난 달이다. 20년 전 스키장에서 있었던 나의 추
락사고. 그 리프트에 나와 함께 올라탔던 현수와 은혜의 결혼식. 이제는
내로라하는 유명작가가 된 현수의 데뷔작 출판. 그리고 열아홉을 막 지
난 스물 무렵, 우리 셋의 대학 합격자 발표일까지. 해만 다를 뿐 전부 1월
의 일이었다.
같은 고등학교 작문 동아리였던 우리는 대학 원서 접수도 머리를 맞대
어 함께했다. 그 결과 우리 셋이 지원한 곳이 2곳이나 겹쳤다. H대 국어
국문학과와 J대 문예창작학과였다. 나와 은혜는 같은 대학에 붙었고, 무
리해서 상향 지원을 했던 현수는 어느 곳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재수 확
정이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내
색이라곤 전혀 없이 현수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먼저 가 기다리겠다고.
1년 뒤에 들어와서 1살 많은 신입이라 네가 뻘쭘해할 때, 선배인 내가 길
을 터주겠다고. 아무 걱정 말라고. 참 가증스럽지. 그런데 말이다. 그랬던
20년 전의 나보다, 현수야말로 더더욱 가증스러운 새끼다. 그래, 그 새끼
는 사람이 아니다.
― 오랜만이지? 은혜랑 나 결혼해. 네가 사회를 봐줄 수 있을까?
10년 전, 문자로 이 부탁을 받았던 서른의 나는 무응답으로 거절을 했
다. 나는 현수보다 더 일찍 은혜를 알았다. 현수가 내게서 빼앗아간 은혜
는 남들과는 다른 아이였다. 또래보다 유독 덩치가 작고 왜소했던 나의
별명은 땅콩이었다. 그런 나를 땅콩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주던 유일
한 아이가 은혜였다.
사실 나는 장애를 가지기 전에도 골방에 박혀 살던 놈이다. 가난한 집
안 형편으로 학원이란 곳에는 발을 들여 보지도 못했으니 방과 후 갈 곳
이 없는 1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친구라 할 수 있었
던 몇 안 되는 녀석들이 학원에 가 있을 시간, 나는 홀로 골방에 들어앉
아 책을 읽고, 문학에 꿈을 품어 스스로 습작을 써보곤 했다.
― 너도 글 쓰는구나.
그런 나의 끄적거림을 알아봐준 것이 은혜다. 언젠가부터는 친구놈들
과 어울리는 것보다 나의 글을 매만지는 일에 더 가슴이 뛰었고 활자를
가지고 노는 일이 더 재밌어졌다. 그러다 보니 골방을 넘어 학교에까지
습작 노트를 가져가게 되었고, 나는 그것을 쉬는 시간에도 붙들고 있었
던 것 같다. 그런 나의 모습을 은혜가 목격한 것이, 우리 둘이 본격적으
로 친해지게 된 계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2, 3학년 때 아예 다른 반이
되었다. 하지만 은혜의 권유로, 1학년 2학기부터 작문 동아리에 가입을
하게 되면서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다. 현수는 그 동아리에 그
다음해에야 들어오게 됐다. 나도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수가
동아리에 들어오게 된 것은 순전히 은혜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른 반이
던 은혜에게 관심이 있던 녀석이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작문 동아리에
지원을 한 것이었다.
그런 놈이 작가로 소설을 펴내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 매체에도
나온다. 데뷔 10주년을 맞았다고 대형서점에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프로모션이나 축전 같은 것도 해준다고 하니 내 입장에선 기가 찰 노
릇이다.
나는 마흔이 되어서도 가난하고 냄새나는 골방, 이 환멸스러운 나의
공간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런데 너는 매체에서, 서점에서 너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준다. 현수, 너는 성공했다. 너는 추앙받는다. 너는 내 꿈
을 살고 있다. 너는 내 오랜 열망을 도둑질했다.
― 관심 있는 여자애를 따라 작문 동아리에 들어갔죠. 믿으실지 모르겠지
만, 그게 저의 시작이에요. 그리고 그 여자애는 바로 지금 제 아내입니다.
인터뷰에서조차 네가 농담조로 말하는 너의 시작. 아주 가벼운 치기에
가까웠던 너의 문학을 향한 그 시작이 시간이 흘러 지금 이렇게 화려하
게 만개해 있다. 나는 이 부조리에 너무나도 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어찌되었건 이 사실은 넘겨버릴 수 있다. 이건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도
저히 감내할 수 없는 건 네가 결혼으로 은혜를 아주 가져가버렸다는 사
실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은혜는 남들과는 다른 아이였다. 나 땅
콩에게 보인 그녀의 관심과 친절은 순수 그 자체였다. 은혜만은 다른 녀
석들과는 달랐다.
가난한 데다가 덩치도 작고 인물도 별로고 심지어 별명까지 땅콩이니
10대의 나는 그야말로 완벽한 찌질이 그 자체였다. 학폭보다 더 비참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교묘한 선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고등학
생씩이나 되면 이제 원초적인 주먹질이나 따돌림은 사라진다. 대신 자신
의 도덕적 우월감을 뽐내기 위해 교묘한 선의를 베풀 대상을 찾는 놈들
이 생긴다. 이를테면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학생부회장이 그랬다. 부
탁한 적도 원한 적도 없었지만 저가 먼저 다가와 나를 챙기는 척을 한다.
음악실로 가면서 장구 같은 것을 대신 들어준다든가, 체육시간에 고정
짝지가 되어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고는 적금처럼 쌓아둔
‘이미지’를 챙겨서 홀연히 떠난다.
방과 후고 방학 때고는 연락 1통 없다가 개학 중에는 또다시 그 챙김
이 시작된다. 물론 그 챙김의 과정에서 가벼운 사담은 하나도 없다. 고마
운 마음에 몇 번 내가 이야기를 건네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찌질이 땅
콩인 내가 키 크고 잘생긴 학생부회장에게 사담을 건넨단 사실에, 주변
다른 아이들 눈치를 보고 불편해하던 녀석의 표정을 보고는 그만두었
다. 학기 말, 녀석이 마지막으로 챙겨낸 것은 스펙이 될 선행상과 내년도
의 학생회장 자리였다.
그런 놈들투성이었다. 하지만 은혜만은 달랐다. 은혜만은.
― 나 작문 동아리이거든. 2학기에 들어와. 네 작품 나도 읽어보고 싶어.
다시 스물의 1월로 돌아와 본다. 내가 두 발로 걸을 수 있던 마지막 겨
울이다. 입시의 승자와 패자가 동아리에서도 나뉘었다. 누군가는 합격의
기쁨을 만끽했고, 누군가는 현수처럼 좌절감에 아파하기도 했다. 어쨌
든 같은 꿈을 품었던 우리이기에, 졸업 전 마지막으로 함께 놀러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 스키장 가자. 스키 타고 싶어. 어이 대학생들, 재수생 부탁 들어줄 거지?
스키장을 가자는 제안은 현수의 것이었다. 들어주지 않을 수 없던 탓
에 우리는 정말로 스키장으로 가게 되었고, 사고는 바로 그곳에서 일어
났다. 스물의 나를, 아주 걸을 수 없는 장애인으로 만든 사고 말이다.
스키는 물론이고 리프트란 것도 난생처음 타게 된 나였다. 앞줄에 있
던 사람들이 리프트 하나에 3명씩 타는 모습을 보고는, 나는 정원이 3명
으로 정해져있는 줄로만 알았다. 내 앞에서 은혜와 현수 그리고 다른 친
구 하나가 리프트에 올랐다. 당연히 나는 다음 거를 타야겠구나 생각하
고는 멈춰섰다.
― 땅콩! 안 타고 뭐해? 이리 와, 같이 타야지!
그때 현수가 외쳤다. 녀석은 몸을 왼쪽 끝으로 붙이면서 나를 태울 공
간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안전요원의 눈을 쳐다보았고, 그는 타도 된다
는 눈짓을 했다. 신나게 올라서 앉아보니 저 멀리 앞에서 3명이 아니라
4명이 탄, 또 다른 리프트들도 보였다. 현수가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
다. 은혜와 나만 같은 대학에 다니고자, 내심 그의 불합격을 바랐던 가증
스러운 사실에 말이다.
그렇게 올라탄 것도 잠시, 내 몸 앞에 자리한 안전바 결합부에서 갑자
제27회 민들레문학상 298
기 기분 나쁜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다 앞으로 가던 리프트가 잠시 멈추
어서더니 이제는 뒤로 역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는 추락했
다. 나 혼자만.
그때 리프트에 타지 않았더라면, 아니 내 몸이 땅콩처럼 작지만 않았
더라면, 탈락되지 않은 안전바 몸체에 다른 아이들처럼 몸이 걸려 사고
를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스키장에 가지 않았더라면,
장애를 갖게 되지도,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지도 않았을 것
이다. 그날 아침까지도 값비싼 비용을 이유로 스키장 여행을 반대했던
어머니에게, 가난을 향한 슬픈 원망과 고성을 악에 받쳐 내지르지는 않
았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 1월의 골방에서 생각한다. 이 빌어먹을 1월이 앗아
간 것이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내 어머니의 숨이다.
<2> 꿈
내가 루시드 드림을 시도한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현수
와 은혜의 결혼식이 있고 난 직후다. 당연히 나는 둘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사고 후 의식이 없을 때에 은혜와 현수가 병실에 다녀간 것을 알고는,
나는 은혜에게조차도 두 번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그 일방
적 절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번번이 차단을 해도, 잊지 않고 매
번 연락을 주었던 두 사람 말고도, 그 누구에게도 망가진 나의 모습을 보
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는 연락을 매번 차단하는 일이, 시간이 흘
러서는 오히려 안부를 묻는 일과도 같아졌다. 모순이었다. 회신을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신년이고, 연말이고, 생일
이고 하며 몇 마디 말을 내게 음성메시지로, 문자로 건네어 주던 일 말이
다. 하여 우리 셋은 끊어진 것이었으나 아주 끊어진 것은 아닌 그런 사이
가 된 것이었다. 이 역시 모순이었다. 그 모순으로 나는 여태까지 여전히
우리 셋이 친구라는 정신적 동질감에 기대왔는지도 모른다. 참 이기적이
게도 말이다.
스키장에서의 사고가 육체적 타살이었다면, 현수와 은혜의 결혼식은
내 정신적 자살을 불러왔다. 한동안 시체처럼 무작정 누워만 지냈다. 방
의 문턱을 넘기는커녕 창문을 열어 풍경을 바라보는 일조차 하지 않았
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니 나중에는 배설물도 거의 나오지 않
는 지경이 되었다. 어머니의 속만큼이나 나의 몸도 아주 문드러져, 욕창
의 증세가 더 악화되었다.
그러다 지치고 지친 어느 하루 겨우 한 차례 잠에 들었는데, 거기서 나
는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은혜와 함께였으며, 작가로서
소설을 펴내면서 책 말미에 내 소중한 어머니에게 눈물로 쓴 헌사를 바
치게 되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꿈인 걸 알았을 때 나는 그대로 누워서는 정말로 한
마리 짐승처럼 울음을 토했다. 15kg이 빠져 산 송장에 가까웠던 사람에
게서 나온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분비물이 얼굴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다시 생생한 현실 같은 꿈을 꾸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꿈인 걸 스스로 인지한 채로 그 세계에 닿고 싶었다. 하여 나는 자각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일컫는 명칭이 루시드 드림이란 것도 알
게 되었다.
루시드 드림은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낭설이 아니라, 큰 규모의 학회
가 세계 곳곳에 있고, 무수한 논문이 정식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현
현한 실재였다.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었다는 얘기다. 나는 점점 그것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침대 위 노트북에서 온갖 서적과 논문을 미친 듯이
독파하게 되었다.
결국 그 병적인 천착은 마침내 실제 시도로 이어졌고, 셀 수 없는 실패
를 치르고 나서는 기어코 성공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첫 공간은 골방이었다. 내 몸이 자리한 바로 그곳이었다. 그래서 한동
안은 현실과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내게 주어진 꿈 세계의 공
간은 너무나 좁았고, 그것을 좀처럼 넓힐 수가 없었다. 두 번째 꿈에서부
터, 선명한 상상력과 약간의 손짓으로 하나씩 작은 변화를 줄 수가 있었
다. 이를테면 어두운 암막커튼의 색깔과 재질을 조금 더 밝고 고급스럽
게 바꿔볼 수 있었다.
나중에는 내 루시드 드림 속 세계에 셀 수 없이 많은 거울들을 채워 넣
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거울들이 서로를 바라보게 하여, 무수한 굴절과
반사를 만들어냈다. 그러고 나니 좁디좁던 나의 골방이 그 거울들을 통
해 넓어지고 깊어지고 다채로워질 수 있었다. 나는 거울을 ‘미러’라고 명
명하기로 했고, 한 칸의 미러마다 저마다 다른 ‘오브제’를 집어넣었다. 서
로 반사되고 중첩되는 수많은 오브제의 상들은 한데 어우러져 별이었고
하늘이자 우주였으며 그냥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기도 했다.
루시드 드림을 논문으로 익힐 때, ‘미싱’이란 게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말 그대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꿈속에서 영영 미아가 돼버리는 것이
다. 루시드 드림을 계속 공부하면서도, 정작 성공했을 때 문제없이 어떻
게 회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늘 마음에 있었다. 물론 내가 익힌 이
론대로라면, 방법론적으로는 실제의 삶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현실부
정’을 명징하게 상상해낼 때, 꿈에서 깨버린다는 걸 알고 있긴 했다. 하지
만 그 개념이 참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것이어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
다. 그러나 기우였다.
첫 시도에서 나는 곧바로 ‘점프’를 터득할 수 있었다. 처음 루시드 드림
이란 걸 인지했을 때, 내가 당장 시도해봤던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바로
두 발로 걷는 일이었다. 걸으려고 발 하나를 내딛는 순간 바로 꿈에서 깨
버렸다. 그래, 그것이 내게 있어 가장 명징한 현실부정일 테지. 그리하여
나는 현실로 되돌아오고자 할 때 발을 내딛는 그 행위를 점프라고 명명
하기로 했다.
그렇게, 꿈에 들었다가 점프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루시드
드림에서 무려 10년을 살았다. 꿈이 현실로, 현실이 꿈으로 뒤바뀐 10년
이었다.
걷기 위해 발을 내딛는 것 외에도 또 몇 가지 현실부정이 있었다. 점프
가 아니라 미러 속 오브제의 형태로 말이다. 현수처럼 작가가 되어 집필
한 나의 데뷔작. 휠체어 없이 두 발로 딛고 서서 작가로서 강연을 하고
있는 나의 사진. 은혜와 만나 정식으로 교제하며 쌓아간 편지들과 반지
와 청첩장. 그리고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다시 뒷모습을 보이며 요리
하고 있으실 것만 같은 작고 낡은 주방의 미니어처까지. 이것들은 나에
게 몹시 소중하여 내 몸에 가까운 미러들에 놓아둔 것들이었다. 그러나
또한 이것들은 도저히 마음이 아파 볼 자신이 없는 것들이기에 뒤집어
놓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빨간 페인트를… 아니, 붉은 피를 발견
하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린 듯하다.
누군가가 미러 속 내 데뷔작과 강연 사진에다 빨간 것으로 X표를 마구
칠해놓았다. 은혜와의 추억들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페인트라고 생
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굳고 식어버린 피였다. 침입자일까? 아니 그럴 수
없다. 루시드 드림에서는 침입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타자가
존재할 수 없다. 스스로의 의식을 가진 또 다른 타자를 만들어낼 수 없
다. 보고 싶은 은혜를 불러내 보려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살려내 보려고
직접 시도해봤기에 안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몹시 심각해질 무렵, 이번엔 이 모든 것을 부정하
는 일이 일어났다. 저 멀리 다른 미러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반사돼 보
인 것이다.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고, 창백하게 흰 얼굴이 보였다. 사람이
었다. 성별은 가늠할 수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순간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공포가 몸을 감쌌고, 나는 곧바로 점프를 하기 위해 몸을 비
틀었다. 그러는 사이 움직일 수 있던 나의 팔이 다른 미러 하나를 툭 치
며 깨고 말았다. 그 미러 속 오브제의 망가짐과 함께, 강한 현기증이 돌
며 현실로 되돌아왔다. 점프가 이뤄지던 찰나, 망가진 오브제가 바로 어
머니의 주방 미니어처였다는 사실과 그것엔 붉은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 어머니, 죄송해요. 어머니, 보고 싶어요. 어머니… 어머니… 엄마.
어머니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작년 1월에 세상을 떠나셨다.
평생 가난과 사투를 벌인 당신께선 끝내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모습
을 보지 못했다. 4년간의 학비를 위해 어머니가 피땀 흘려 마련해놓으셨
던 얼마간의 돈은, 나의 병치레에 쓰여 순식간에 소진되었다. 친구들이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기는 동안, 나는 병실에 틀어박혀 재활과 치료에
만 전념해야 했다.
스키장 운영사는 리프트의 기계적 결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
다. 그 리프트는 3인이 정원인 게 맞았다. 안전바의 결함은 논외였고 쟁
어갔다. 어머니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조
리 긁어 모아 법적 다툼도 벌이셨다. 하지만 4인을 태운 것에 대한 과실
만 부분 인정되어, 운영사로부터 도의적 차원에서 아주 약간의 위로금만
지급받은 게 전부였다. 사고로 입은 장애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
지 않았다.
후일에 들은 일이지만, 내가 리프트에 올라타는 것을 눈짓으로 허락해
주었던 그 안전요원도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 봤자 그도 나보다 고
작 몇 살 많았던 어린 청년이었다. 그에게도 나름의 꿈이 있었을 터인데.
꿈이란 말은 다각적으로 굴절된다. 꿈은 헛된 희망이기도 하고 기약
없는 현실이 되기도 하지만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후자에 가
깝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그렇게 미치도록 심취하고 천착했던 꿈에 있
어 모르는 것이 있다. 어머니의 꿈은 뭐였을까. 어머니 당신의 꿈 말이다.
나는 그것을 모른다.
― 찾아내겠어.
어머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내겠다. 찾아내겠다. 그리고 어머
니의 주방 미니어처에다 기어코 붉은 피를 칠해놓은 너를 만나야겠다.
찾아내겠다.
이윽고 공포가 사라지고, 한참의 휴지기를 지나, 다시 루시드 드림에
빠졌을 때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시기를 바라며
만들었던 그 오브제에, 나의 지난 몸부림으로 깨져버린 바로 그 주방에
X표의 붉은 피가 새로이 칠해져 있는 것을. 이렇게 만든 너, 침입자를 반
드시 찾아내겠다.
― 앗, 거기 서! 이봐, 도망가지 말라고. 이러는 이유가 뭐야, 대체!
녀석이 보였다. 지난번처럼 미러들을 통해 일부가 반사되는 식이었다.
녀석은 한참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길 반복했다. 나는 자각몽에서,
자각할 수 없는 시간만큼 추적을 강행했다. 그러나 애초에 붙잡을 수 없
는 추적이었다. 움직일 수 없는 다리 대신, 바닥에 맞댄 상체로 몸을 질
질 끌었기 때문이다.
<3> 나
바닥에 몸을 기던 내 팔을 붙잡은 건 소년이었다.
― 드디어.
― 네, 드디어.
만나면 두들겨 패고 싶을 줄 알았는데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앞날
의 분노는 사그라들고 마음이 차분했다. 정말이야말로, 녀석이 반갑기
까지 했다.
― 묻고 싶었어. 대체 넌 누구야? 미러 속 내 오브제들을 왜 망치는 거지?
― 참 오래도 걸렸네요. 드디어 만났어요.
녀석은 내 질문에 대답 않고, 제 할 말만 내뱉었다.
그런데 그 말이 조금 이상했다. 여태까지 셀 수도 없이 연신 나를 피해
사라져놓고는, 드디어 만났다고 내뱉는 저 말. 마치 저 자신도 나를 만나
길 원했다는 소리같이 들렸다.
― 나는 도망가는 너를 볼 때마다 매번 붙잡으려고 했어. 금세 사라졌지만.
― 내가 도망가고 있던 게 아니라, 당신이 도망치고 있던 거예요.
소년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를 해댔다.
―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는 거지? 재미없는데.
― 당신이 나를 쫓고 있던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을 쫓고 있었다고요.
― 헛소리 마. 도대체 무슨.
― 이해해요. 당신의 착각은 바로 저 미러들의 굴절 때문이었겠죠. 무수히
많은 미러들에서 어렴풋이 잡히던 내 몸의 일부, 나의 그림자. 실은 당신을 쫓
고 있는 모습이, 마치 당신에게서 도망가는 모습처럼 보였을 테죠. 이제는 부
숴버리죠.
그 말을 끝맺음과 함께 소년이 중지로 엄지를 쓸어내렸다. 그 손짓에
서 시작된 작은 파장이, 닿지 않을 저 멀리 어딘가에서부터 무자비한 굉
음을 데려왔다. 무언가가 속절없이 처참하게 깨지는 소리, 미러였다.
꿈 속 세계 천장의 소실점 끝에서부터 미러가 비명을 지르며 하나 둘
도미노처럼 줄지어 깨어지고 있었다. 잔해는 떨어짐 없이 증발해 연기만
피우고 사라졌다. 그만하라는 말을 꺼낼 요량 없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루시드 드림이 무너진다. 내 꿈이 무너진다. 10년간 겹겹이 쌓아올린
나의 세계가 무너진다. 굉음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저 미러들을 보고 있
노라니 마치 불꽃축제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허공에
제 몸짓을 현현하게 남기는 불꽃처럼, 모순되게도 무언가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광경 같았다. 그러니까, 파괴라기보
다 창조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바
라만 보던 나는 허무나 분노, 황망함 같은 너저분한 감정보다 이제는 아
주 확고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리하여, 도대체 너는 누구인가.
― 그래서 넌 이 세계의 절대자 같은 존재라도 되는 건가.
― 꿈에선 10년이나 미러를 봐놓고, 현실에선 거울을 보지도 않았나 보네요.
― 무슨 소리야?
― 얼굴도 까먹어버린 거예요?
유약해보이면서도, 꿈을 향한 강한 확신에 차 있던 저 맑은 눈. 부푼 미
래를 머금고 있는 듯 양 꼬리가 살포시 올라가 있는 저 입술. 그래, 땅콩.
소년은 나였다. 그 사고를 당하기 전, 장애인이 되기 전의 나였다. 열아
홉을 지나 스물의 1월에 닿았던 앞날의 나였다.
소년이 바로 20년 전의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녀석은 느닷없이 말을 계속 이었다.
― 저거 봐요. 난 당신 세계를 망가뜨리지 않았어요.
미러들이 깨어지고 증발하면서 자욱했던 연기가 조금씩 사라져갔다.
소년의 정체가 베일을 벗은 것처럼 연기 뒤편의 형체들도 하나 둘 윤곽
을 드러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의 루시드 드림 속 세계는 망가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 미러는 거울이 아니라 창이었어요. 난 창을 깨트린 거예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나의 표정을 보고는, 녀석은 곧바로 말을 덧붙
였다.
― 쉽게 말해 당신은 루시드 드림에서조차 내부자가 아니라 외부자였어요.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였고요, 행동자인 척하는 망상가였죠. 그동안 루시드
드림에서 당신은 마치 게임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겠지만, 실은 그 게임을
실행하고 있는 플레이어였을 뿐이라구요. 마치 미러를 모니터나 스크린 삼아
서 말이죠. 꿈조차, 꿈에서조차. 어때요, 뼈아픈가요?
소년의 끝말에 무언가 대답을 해보려던 찰나에, 나는 균열을 발견했
다. 분명 녀석의 말대로 나의 루시드 드림 속 세계는 망가지지 않고 그대
로인 듯했다. 그러나 어딘가 몇 군데 다른 구석이 있었다. 나는 그 균열
들이 일어난 장소가, 앞전에 그가 붉은 피로 X표를 해버렸던 곳들과 일
치한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 더 뼈아픈 이야기들을 해야겠네요. 첫 번째, 그 사고에는 어떤 필연도 작
용하지 않았어요. 당신 몸집이 땅콩처럼 작아서, 당신만 리프트에서 떨어졌던
게 아니에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에요. 하필이면 안전바 한쪽이 망가져버
린 맨 오른쪽에 당신이 앉았기 때문이라고요. 그 자리엔 당신이 아니라 누가
앉았어도 떨어져서 다쳤어요.
녀석의 말이 맞았다. 안전바의 결착에 이상이 있음을 인지한 안전요원
이 중간지점에서 리프트의 작동을 멈춘 뒤, 출발점을 향해 다시 역방향
으로 회귀시키고 있었다. 첫 지점으로 돌아가던 그 사이에, 기어코 오른
쪽 안전바가 휘어져 결합부 하나가 탈락돼 버리면서 나도 함께 떨어진
것이었다. 나의 몸집이 작아서가 아니었다. 소년의 말대로 하필이면 맨
오른쪽에 앉아있던 게 나였기 때문이었다.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그 자
리에 앉았더라면 내가 아닌 누구라도 떨어져 다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 두 번째, 당신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어도, 장애인이 되지 않았어도 은혜
씨와는 이어지지 못했어요. 은혜 씨가 당신과 당신의 글을 아꼈던 건 순수한
우정에서 비롯된 일이었어요. 사랑이 아니었다고요. 사고 후에, 마치 현수 씨
가 당신 빈 자리를 대신해 은혜 씨 곁에 다가갔던 것이 아니에요.
그래, 스물이 되기 전부터 현수와 은혜는 이성적인 관계였다. 그 시절
함께 어울리던 우리의 모습에서 나는 이미 둘의 감정적 교류를 인지하고
있었다. 현수가 내게서 은혜를 뺏어간 게 아니다. 십대의 끝자락과 이십
대의 첫 자락에서 은혜에게 품었던 나 땅콩의 사랑은 철저한 외사랑이고
짝사랑이었다.
― 마지막, 가장 아플 거예요. 각오하고 들어요. 어머니의 숨은, 잃어버린 과
거도 아니고 마주하지 못한 미래도 아니고 바로 현재가 앗아간 거예요.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이윽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 꿈을 품던 과거의 어린 아들을 상실해서가 아니에요. 홀로 섰을 미래의
장성한 아들을 만나지 못해서는 더더욱 아니죠. 어머니를 병들게 한 건, 루시
드 드림을 한답시고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지낸 현재의 당신이에요.
10년은 남 탓과 세상 탓만 하며 살았고, 10년은 현실을 등진 채 루시
드 드림만 하며 살았다. 사고를 당한 스물에서 오늘의 마흔에 이르기까
지 말이다. 20년간 병들어 숨이 메말라 가던 건 나뿐 아니라 어머니이기
도 했던 것이다. 녀석의 말이 맞다. 어머니의 숨은, 시체 같던 나의 현재
가 앗아간 것이었다.
― 나를 불러낸 게 당신이에요. 지금 숨을 헐떡이며 눈물 흘리고 있는 당신.
그리고 이 모든 사실들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래, 사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해왔던 것이다.
소년을 불러낸 게 나 자신이라는 사실. 소년이 바로 20년 전의 나라는 사
실 그리고 내가 꾸고 있는 지금 이 꿈이 중첩몽, 꿈속의 꿈이란 사실까지
도 말이다. 이미, 일찍이, 진즉에 다 알고 있었다,
― 그러니까 지금 이 모든 것은, 루시드 드림 속에서 만든 또 다른 루시드 드
림, 중첩된 꿈이에요. 당신은… 아니, 우리는 너무 오래 꿈을 꿨어요. 이제 그
만, 이제 제발 깨어나요.
소년은 또 한 번 중지로 엄지를 쓸어내렸다. 그러자 온전했던 내 루시
드 드림 속 세계가 이번엔 정말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시작
된 파괴의 해일이 기어코 눈앞까지 떠밀려 왔을 때, 비로소 나는 중첩몽
에서 깨어났다.
<4> 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나의 골방이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똑같은 침대, 똑같은 몸.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
이 들었다. 혹시 이것도 꿈이 아닐까 하는. 2겹의 중첩몽에서 깨어났으
니 점프를 해서 돌아온 곳이 0단계의 현실이 아니라 1단계인 원래의 꿈,
원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의 나 땅콩이 파괴한 루시드
드림 속 세계는 사라졌으니 움직일 수 없는 내 몸이 자리한 침대와 골방
은 원몽의 것이라 하여도, 현실의 것이라 하여도 말이 되었다. 루시드 드
림이라는 허상을 거두어내니 이제는 아예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것
만 같았다.
뭘 해야 할까. 이제 루시드 드림은 없다. 어머니도 없다. 혼자뿐이다.
휠체어 없인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침대 위에서
천장을 한참 바라보다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냥 무작정 글을 써야겠
다는 것. 생각과 상상력과 약간의 손짓으로 10년간 루시드 드림에서 하
나의 세계를 창조해냈지 않은가. 글이란 것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물
론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똥 덩어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
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내가 글을 쓰는 행위가 ‘배설’으로나마 기능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조금은 후련할 것 같다. 혼자서 배설조차
도 쉬이 할 수 없던 장애의 문턱에서 간신히 느껴보는 첫 해방감이다. 꿈
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만큼, 아니 정확히는 내가 자리한 이 세계가 꿈
인지 현실인지를 이제는 애써 구분하고 자각하지 않으려는 만큼,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도 구태여 그 실재를 확인하거나 감각하지는 않으려고 한
다. 다만 내 글과 내 이야기에 집중해야겠다.
유명작가가 된 현수처럼 근사하고 품격 있는 글을 쓸 실력은 되지 않
을 것이다. 은혜에게 끝내 전하지 못한 숱한 연서와 편지들처럼 진실된
문장을 쓸 순수함도 더는 내게 남아있지 않다. 하여 나는 첫 글을 그저
기록과 고백의 형식으로 쓰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쓸 거
냐고?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준 고마운 당신이, 나의 기록과 고백이 궁금
하다면 다시 이 글의 맨 첫 페이지로 되돌아가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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