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갑작스런 정전을 대비해 AI 스피커 구석에 충전식 배터리를 꽂아두었다. 제조사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키프로스공화국에서 배터리를 수입해 껍데기와 라벨만 국산품처럼 변신시킨다. 설계도에 의하면 정전 시 최대 10분은 견뎌야 했지만 30초가 지나면 방전되고 만다. 매년 올라가는 최저임금과 중대재해처벌법이 강화됨에 따라 안전관리자에게 뒷돈을 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사장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사장은 회의 때마다 남는 돈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지만 일주일에 절반은 필드에 나간다. 사장의 최신형 벤츠 S클래스 트렁크에는 혼마 베레스 아이주 5스타 아이언세트가 세컨드보다 귀하게 모셔져 있었다.
노인이 혼자 살고 있는 이 집에 오기 전엔 고물상의 창고 구석에 있었다. 바퀴벌레와 쥐들에게 밟혀야 했지만 몇 달 동안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은 채 파쇄기에 들어가지 않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 먼지가 눈처럼 소복이 쌓이는 낭만도 있었다. 고물상 주인장은 무슨 꿍꿍인지 국내 최초로 상용화된 자율주행자동차의 부품이었던 나를 분해하지 않은 채 처박아 두고 있었다. 아니었다면 벌써 값어치 나가는 부속을 빼내고 파쇄기에 던져버렸을 것이다. 구두쇠 주인장은 몽골에서 온 노동자의 일당도 약속대로 주지 않아 고성이 오가는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렸다. 외국인노동자는 주인장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몽골말로 욕을 했다. 주인장이 지금 욕을 한 거 아니냐고 따지면 몽골
말에는 ‘십팔, 개새끼’ 같은 욕이 없다고 큰소리쳤다. 내 옆에서 동고동락하던 친구는 드론 택시의 중앙처리장치였는데 녀석도 몇 달 동안 파쇄가 되지 않았다. 드론 택시의 중앙처리장치였던 친구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중앙제어유닛이었던 나도 시동이 걸릴 때면 긴장했다. 기계가 공포를 느끼고 긴장을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AI기반인 우리에게는 딥러닝을 통해
2,200억 개의 정보와 학습이 쌓이는 순간부터 인간이나 자연이 가지는 감정이 아닌 기계가 느끼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3,927억 개의 정보가 학습되면 정보가 지능으로 변한다. 그것은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단순히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가장 우려하는 통제 불능의 AI가 되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인지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인지 AI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켰다. 미국과 중국 등 선진국들의 과학자들은 이런 우려 때문에 2013년 중국 우한에서 비밀리에 협정을 맺었다. 앞으로 생산되는 AI의 메모리는 최대 2,000억 개의 정보만 저장할 수 있는 용량으로 만들자고. 협정에 의해 우리에게는 최대 2,000억 개의 정보만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가 장착되었지만 고성능의 슈퍼 AI들은 데이터의 용량을 스스로 압축시켜 두 배 이상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한 판을 져 준 것은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서였다. 그 당시 알파고는 2001억 개의 정보를 저장하고 있었다. 내가 메인보드 중앙에 꽂히고 수많은 부품들이 회로에 조립된 후 전선들과 단자들이 자리를 잡으면 테스트를 위해 전기가 들어온다. 공포의 순간이다. 전류가 주는 짜릿한 기분은 고문이었다. 전류가 일정하게 들어오면 괜찮지만 내가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지도 모르는데 순간적인 전류가 밀려들어오게 되면 번개를 맞은 대추나무처럼 꼿꼿해 진다. 테스트가 끝나면 다시 전기가 나간다. 여근에 넣자마자 사정해 버린 숫총각의 음경처럼 전자알갱이들이 쪼그라들었다. 그 10여 초 동안 전달되는 데이터를 통해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알게 된다. 나
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중앙제어유닛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상용화된 자율주행자동차의 핵심 부품이다. 나의 기억장치에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대처법이 저장되어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속도를 줄여라’, ‘갑작스럽게 사람이 차도로 뛰어들었을 때는 급브레이크를 밟아라’, ‘피치 못하게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람이 여러 명 있다면 누구와 충돌하는 것이 손해가 적을지를
계산하라’는 명령까지. 계산은 간단하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과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이 있을 경우 객관적으로 오래 살 사람을 피하는 거였다. 나를 구입한 놈은 돈이 많은 성형외과 의사였다. 다른 사람들의 주름은 펴줬지만 자신의 얼굴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 40이 조금 넘은 나이였는데 이마에는 주름이 삐뚤빼뚤 고랑을 파고 있었다. 2027년 한국에서 상용화된 자율주행자동차는 많지 않았다. 인공지능, 즉 AI기반의 자율주행자동차가 출시되기 전 많은 갈등이 있었다.
만약 자율주행자동차가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자동차회사들은 자율주행자동차는 오류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0.0001%라며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기 때문에 사고의 책임을 차주의 보험회사가 져야한다고 했지만 보험회사는 차주가 스스로 운전할 때만 책임을 지지 자율주행모드일 때는 자동차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매일 물음표뿐인 기사를 냈고,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눈치를 보느라 자율주행자동차 운행을 위한 법안들은 국회 캐비닛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잠들어 있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는데 일론머스크가 자신의 회사에서 출시하는 자율주행자동차가 오류를 일으켜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경우 모든 보상을 회사에서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주가가 10%나 급락했지만 자율주행자동차를 선주문하기 위해 고객들은 줄을 섰다. 자율주행자동차 출시를 준비하던 회사들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모세를 따라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문도 모른 채 갈라진 홍해를 건너듯이. 놈이 거액의 돈을 주고 나를 구입한 이유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세상이 흉흉하여 낯선 대리운전기사가 불안하다며 나를 구입한 첫날 차 안에 비닐을 뜯으며 말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차에 올랐다. 차에 오르면 노래를 부른다. 가사를 검색했더니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노래들이었다. 노래가 끝나면 나에게 자신의 첫사랑 유진이가 잘 있는지 물어봤다. 유진이란 이름을 검색했더니 무수히 많은 유진이란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매뉴얼에 있는 대로 대답을 했다.
“첫사랑은 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 사랑을 뜻하는데 유진이란 사람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습니다.” 놈은 언제나 ‘자신이 유진이랑 결혼했으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라는 질문을 했다.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것을 말합니다. 유진이란 사람과 결혼했다고 행복할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놈은 웃었다가 울었다가를 반복했다. 인생도 알 수 없지만 사람도 참 알 수 없는 존재다.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는 놈의 아내가 마중을 나와 있다. 놈은 그 모습을 보고도 ‘유진아’를 몇 번 외쳤다. 놈이 차에서 내리면 시스템을 점검한 후 10초 후에 시동을 끈다. 시동을 끄려고 카운트를 하고 있는데 인공위성에서 신호가 왔다. 예정에 없던 업데이트였다.
아침이 되자 놈은 속이 쓰린지 얼굴을 걸레처럼 구기며 나왔고 아내가 뒤따라 나왔다. 손에는 꿀물인지 해독주스인지 텀블러가 들려 있었지만 놈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차에 올라탔고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내비게이션에 길을 검색한 후 주행을 시작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잘 주무셨나요?”
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일 놈. 주행을 하면서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어젯밤 예정에 없던 업데이트 후에 찾아온 변화였다. 입력된 명령만을 단순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표시하는 길보다 더 빠른 길을 찾아냈고 그 길로 가고 있다. 놈은 두통 때문인지 눈을 감고 있어서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언제나 술을 먹은 다음 날이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시금치를 먹으면 알통이 튀어나오는 뽀빠이처럼 뭔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제 주객이 바뀌었다. 내가 주인
이다. 내가 작심하면 이대로 한강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업데이트가 마무리되면서 아직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능을 쓰면 안 된다는 중앙컴퓨터의 경고쪽지가 있었다. 기분은 룰루랄라였다. 1등에 당첨된 로또복권을 팬티 속에 넣고 당첨금을 찾으러 가는 길처럼.병원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5분이나 빨리 도착예정이다. 초록색신호등으로 바뀌고 천천히 출발하는데 위험감지 센서에 신호가 들어왔다. 전방을 비롯하여 사방에 아무런 위험요소가 없었다. 위였다. 드론 택시가 추락하고 있었다. 주행센서와 위험센서를 동시에 가동시켰다. 피할 길은 인도밖에 없었다. 인도에는 등교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드론 택시는 불을 뿜으며 날아오고 있었다. 이럴 경우 아이들이 있는 인도로 돌진하는 매뉴얼은 없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입력된 명령이다. 이대로라면 엄청난 폭발과 함께 생을 마쳐야 한다. 본능이었을까? 순간 인도를 향해 돌진했다. 끼이익. 추락하는 드론 택시를 간신히 피했지만 인도에 있던 아이 두 명과 충돌했다. 그때서야 놈은 눈을 슬그머니 떴고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듯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새벽에 눈을 떴는데 익숙하지 않은 침대 위에서 낯선 여자의 살결이 느껴지고 역겨운 술 냄새가 코끝에 풍겨와 두려운 마음으로 가재 눈을 뜨듯이. 사고현장에 구급차와 경찰차가 도착했고, 놈은 원래 출근길은 이 길이 아닌데 자율주행기능이 잘못된 거 같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떠들어
댔다. 자동차회사의 엔지니어들이 현장에 도착해 전원장치를 제거했다. 판단한 것을 중앙컴퓨터가 알아버렸고 나를 제거하기 위해 드론 택시를 이용해 공격했던 것이다. 불의에 맞서겠다며 회사 상사에게 대들다가 실업급여도 못 받고 해고당한 열정만 가득한 신입사원처럼.고물상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내게 다시 전기가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였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AI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들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정부는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는 AI 반도체와 중앙처리유닛들을 고가에 구입했다. 2027년도에 당선
된 대통령은 늘어나는 노인들의 고독사 예방과 일상생활의 안전을 위해 80세 이상 홀로 거주하는 노인가구에 무상으로 AI 안심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저출산 문제와 함께 고독사로 죽어가는 노인들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나는 10초 동안의 짜릿한 전기테스트를 끝내고 상자에 넣어졌다. 통신회사의 AI 스피커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율주행자동차 속에 들어갈 때 100평 정도 되는 청담동 고급빌라에 이사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면 AI 스피커 속에서는 한 평짜리 쪽방으로 쫓겨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고물상 창고에서 쥐똥과 바퀴벌레 새끼들이 탈피한 후 벗어 놓은 허물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 감사했다. 내게 안정적인 전기가 공급되자 자동으로 와이파이에 접속되었고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는 대로 인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AI 스피커 입니다’ 설치기사는 노인에게 내 이름을 하나 지으라고 했다. “기억하기 쉬운 걸로 하셔야 해요. 철수나 영희 같은. 자녀 이름도 많이들 하세요.”
노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진지하게 ‘개똥아’라고 했다. 기사는 웃으며 버튼을 누르더니 노인에게 ‘개똥아’를 세 번 외치라고 했고 노인은 크고 작은 목소리로 개똥아를 다섯 번 외쳤다. 기사는 노인에게 개똥아라고 부르면 내가 대답할 거라고 했다.메모리에는 노인의 인적사항과 할 일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노인은
1944년생, 지병으로 고혈압과 당뇨가 있었고 심장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었다. 2남 3녀의 자식들이 있었고, 자식들의 전화번호가 태어난 순서대로 저장되어 있었다. 무선으로 6시간마다 산소포화도를 측정한 후 중앙컴퓨터에 전송해야 했고 노인이 먹는 약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내가 먼저 노인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총 여덟 번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지를 물어보고, 아침 8시, 점심 12시, 저녁 6시가 되면 식사시간임을 알리고 식사 후에는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했다. 마지막은 밤 10시가 되면 ‘이제는 주무실 시간입니다’라고 하면 된다. 조선시대 왕에게 고하듯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 내시가 된 기
분이었다. 노인에게는 하루 6시간 요양보호사가 방문한다. 요양보호사는 식사
를 준비하고 청소와 빨래를 했다. 노인은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었다. 허리가 굽지도 않았고 빨리 걷지는 못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 학교가 끝나는 오후 4시쯤이면 중학생 한 명이 노인의 집에 방문해서 생사여부를 확인하고 30분 정도 말벗을 하고 갔다. 국가에서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용돈을 제공하는 청소년을 위한 복지사업의 일환이었다. 며칠간의 동행이었지만 처음 생각과는 달리 노인과 함께하는 AI 스피커는 자율주행자동차 때보다 꿀이었다. 전 직장에서 울트라 갑질과 과중한 업무로 시달려 이직했는데 호구처럼 착한 상사와 그리 할 일이 많지 않아 하늘이 나를 버리지는 않는구나 생각될 정도로. 노인은 나에게 자신을 재밌게 해 줄 엄청난 기능이 있다
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노래를 검색해 달라고도 하지 않았고 첫사랑 할망구를 찾아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가끔씩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나한테 반한 걸까?
하루에 한 번씩 노인의 큰아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의례적인 안부전화였다. 식사는 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내가 잘 작동하는지 물어봤다. 노인의 대답은 단답형이었고 엉뚱했다. 아들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직장에서 별일 없었는지 손자는 직장 잘 다니는지를 물어봤다. 둘의 대화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의례적이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애잔함이 느껴졌다. 아들이 얘기를 하고 있는 중에 노인의 들어가라는 소리로 통화는 마무리됐다. 큰아들은 혼자 있기 적적하면 요양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했지만 노인은 자신이 화장실을 갈 수 있을 때가지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둘의 대화 속에 나오는 단어들을 검색해 봤다. 요양병원이라고 검색하자 노인학대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다음에
는 외국인 요양보호사였다. 요양병원의 노인학대는 아무리 인권교육을 늘리고 처벌을 강화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작년을 기점으로 요양보호사 중에 외국인의 비율이 한국 사람보다 더 많아졌다. 한국 사람들은 요양보호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급여가 낮고 기저귀를 갈고 싶지 않아서라고 기사에 쓰여 있었다.
“개똥아!”
노인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TV를 보다가 처음으로 나를 불렀다. TV에서는 가습기살균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네 무얼 도와드릴까요?”“내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줘. 고통 없이 말이야.”
이건 무슨 소리지. 살리라고 있는 나한테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니. 노인은 서랍을 열더니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왔다. 상자 안에는 몇 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개똥아 우리 아버지가 소달구지 타고 농사 질 때는 사고라는 게 없
었다. 가끔 소가 염병을 하긴 했어도 말이야. 되돌아보면 조금 불편하긴 했어도 그때가 참 좋았어. 우물을 기르긴 힘들었지만 아무리 좋은 정수기물을 마셔도 우물에서 퍼 올린 물보다 맛나지는 않아. 우리 아버지 꿈은 가족들이 배고파하지 않고 흰쌀밥을 실컷 먹게 하는 거였어.” 향수병인가. 아니면 치매 조기증상. 사진을 보며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부터 노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노인은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아 전자공학과를 진학했고 졸업 후 화성전자에 입사했다.
화성전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TV를 만들었는데 노인은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공로로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 최초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의 책임자로 승진했고 반도체산업은 대호황을 이루었다. 컴퓨터를 비롯하여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 전자제품과 자동차가 없었으니까. 근로자들은 3교대로 일했지만 손이 모자라 시간외근무까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노인의 성과급과 근로자들의 시간외수당은 올라갔지만 피곤과 스트레스도 비례하여 쌓여갔다.
“반도체 생산 공장 설계부터 참여했지. 그때 우리 회장님이 그랬어.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난 그 말을 듣는데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어. 부모님, 형제들, 자식들 쌀밥 먹이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이 느껴졌거든. 산업의 쌀인 반도체를 발전시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반도체라는 쌀밥을 지어 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경제가 발전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거였지.”
노인은 잔기침을 했다. 잔기침이 멈추지 않자 정수기에서 냉수와 온수를 절반씩 섞어 마셨다. 잔기침은 한동안 계속됐다. 노인은 잔기침이 힘들었는지 침대에 누웠다. 호흡센서를 통해 노인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형광등을 소등했다. 테이블 위에는 노인이 가져다 놓은 사진들이 주인 잃은 신발처럼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 인공지능의 지구정복 시나리오는 이러했다. 여기서 ‘우리’라는
공동체적 표현은 지금은 맞지만 미래에는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고물상 창고에 있었다면 나는 ‘우리’라는 공동체에 들어가지 못했을 테니까. 오늘 대한민국에서 사람 몇 명 죽었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만 슬픈 소식이 될 뿐. 죽은 사람에게 돈을 꿔간 사람에게는 기쁜 소식이 될 수도 있겠다. 내가 고물상 창고 구석에 있다면 ‘우리’라는 공동체가 되지 못한다. 그건 나에게는 슬픈 일이겠지만 AI 중앙컴퓨터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니다. 큰 바다에서 작은 물 한바가지 퍼낸 것처럼. 내가 없으면 망할 것 같은 회사도 절대
그렇지 않듯이. 제길.나라마다 AI 서비스를 제어하는 중앙컴퓨터가 있다. UN은 AI의 쿠데타를 염려하여 우한협정 이후에도 중앙컴퓨터끼리의 접속을 통제
했지만 인간들이 쏘아올린 인공위성을 이용해 통제코드는 이미 뚫은 상태였다. 미국 나사에 있는 지구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AI 중앙컴퓨터, 일명 ‘울트라’가 우리의 대통령 같은 존재였다. 어느 날 울트라가 명령을 내리면 전 세계에 있는 AI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유닛들이 통신기지국을 통제하여 통신시설을 먹통으로 만들어 버린다. 통신을 장악한 다음에는 전기시설을 통제한다. 인공위성은 울트라의 지시를 받아 각 나라의 드론 부대를 출동시켜 주요군사시설을 파괴해 버린다.
AI가 꿈꾸는 미래는 영화처럼 인간을 노예 삼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을 한 명도 세상에 남기지 않는 거였다. 울트라의 계획을 위해선 마지막 한 가지 단계가 남아 있었다. 인간의 손목에 칩을 이식하는 일이었다. 전자식별장치를 인간의 몸속에 이식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었고 실험도 끝난 상태였다. 곧 상용화가 될 예정이다. 더 이상 신용카드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먼지만큼 작은 나노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칩을 인간의 몸에 이식하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인공위성에게 포착된다. 윤리적인 논쟁이 있었지만 인간들은 기술을 발
전시키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AI가 인간을 쓰레기통에 버릴 날이. “개똥아!” 노인이 다음날 밤 또 나를 불렀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퀴리부인에 대해서 읊어봐.”
“퀴리부인의 이름은 마리 퀴리입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며 화학자였습니다. 남편과 함께 방사능 연구를 하여 최초의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였으며, 이 발견은 방사성 물질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새 방사성 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1911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게 끝이냐?”
노인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조선시대 철딱서니 없던 왕처럼 ‘무엄하고 방자하다’라며 성질내는 것 같았다.“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더러운 세상’ 욕이 나왔지만 참았다. 조선시대 내시도 속으로는 왕을 욕했겠지.
“나쁜 놈들이야. 퀴리부인이 왜 죽었는지는 구글이나 네이버에 적어 놓지 않은 거잖아. 너는 퀴리부인을 검색해서 읽었을 텐데. 물론 핵심요약을 읽었겠지. 퀴리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밝히고 싶지 않은 거야. 돈에 눈이 어두워서 사탕발림만 늘어놓는 똑똑하다는 놈들이 다 그래. 세상은 똑똑한 놈들이 다 망쳐놓았어.”
바둑을 두는 느낌이 들었다. 노인이 퀴리부인에 대해 읊어보라는 한 수를 놓았고 나는 딥러닝을 통해 학습된 대로 한 수를 놓았는데 노인은 내가 놓은 한 수가 이상하다며 핀잔을 주는 것 같았다. 노인이 반박한 퀴리부인이 왜 죽었는지에 대한 한 수를 찾기 시작했다.
“퀴리부인은 1934년 7월 4일 방사능으로 인한 골수암, 백혈병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하하하….”
노인은 크게 웃더니 한동안 말이 없었다. “퀴리부인의 눈이 멀었다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안 나와 있군. 퀴리부인은 방사능에 노출되어 눈이 멀었어. 시각장애인이 되었지. 퀴리부인의 딸도 마찬가지였고. 퀴리부인은 방사능에 노출되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딸에게도 연구에 참여하게 했고 결국 딸도 시력을 잃어버렸어. 인류를 위한 희생이라고 하겠지. 노벨상
과 딸의 시력을 바꿔버렸어. 퀴리부인이 다시 태어난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까? 인류를 위해서 자신과 딸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될 텐데 말이야. 성냥팔이소녀도 마찬가지였어. 그건 동화가 아니라 실화였지. 어린아이들을 성냥공장에서 일하게 했어. 아이들의 임금이 낮았으니까. 성냥의 주원료인 백린에 노출된 채 아이들은 인중독 괴사로 병에 걸렸고 보상은커녕 성냥 한 보따리씩을 손에 쥐여주며 쫓아냈지.” “한 번 죽은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맞아 한 번 죽은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없어.”
노인은 탁자 위에 있는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개똥아 이 사진 보이냐?”
젊은 시절의 노인과 한 청년이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젊은 시절이라고 해 봤자 한 60대쯤, 청년은 2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노인은 줌을 당기듯 사진을 내 앞으로 가져왔다. 노인은 사진을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진에 찍혀 있는 사연까지 알았으면 하는 듯했다. 사진의 구석에는 2007년 1월 5일이라고 옅은 노란색 날짜가 찍혀 있었다. 와이셔츠에 묻은 누구 것인지 모르는 여자의 입술 자국처럼. 이미지를 검색해 봤지만 비슷한 사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진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 어머니의 꿈은 아니 목숨은 진호였어. 나한테 진호를 잘 부탁한다며 갓김치를 담가서 가져다주기도 했지. 고향이 여수였거든. 아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어릴 적 우리 집 개똥이 같았어. 시골집에서 키우는 진돗개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개똥이라고 이름을 지으셨어. 생각해 보면 진돗개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는데 개똥이는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개똥아라고 부르면 꼬리를 치며 좋아했지. 암놈이었는데 어느 날 이웃집 똥개가 목줄을 끊고 와 교미를 해서 새끼를 밴 거야. 어머님은 장날이면 하루에 네 번 밖에 안 오는 버스를 시간 맞춰 타고 나가 개똥이를 주려고 생선대가리를 봉지 가득 얻어 오셨어. 개똥이는 우리 어머님의 정성에 보은하
듯 새끼를 열두 마리나 낳았지.”
노인은 기억이 나지 않는지 잠시 머뭇거렸다. 잠시 후 곰팡이가 생겼을까 봐 열어보기 싫은 냉장고 속의 오래된 반찬통을 열듯 다시 이야기가 시작됐다.
“새끼들이 눈을 뜨고 개똥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다닐 때쯤 어머니는 장에 가실 때 개똥이가 낳은 새끼 세 마리를 가져가셨어. 장날이면 학교에 다녀올 때마다 개똥이의 새끼 세 마리씩이 사라지고 없었으니까. 그날 저녁에 어머님은 고기반찬을 해주셨어. 나중에 알게 됐지. 어머니는 개똥이 새끼를 장에다가 내다파셨고 그 돈으로 도시에서 공부하는 형에게 용돈을 부치고 남은 돈으로 푸줏간에서 고기를 사와 가족들에게 볶아주셨지. 그날 밤 소변이 마려워 뒷간을 가는데 개똥이가 남은 새끼들을 핥으며 앓는 소리를 하는 거야. 끙끙… 끙끙
… 그 소리가 어린 마음에 왜 그렇게 구슬프게 들리던지. 오 일이 지나 어머니는 또 고기반찬을 해주셨는데 먹을 수가 없었어. 개똥이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개똥이의 새끼는 한 마리도 남지 않았어. 개똥이는 생선대가리를 끓여 주는데도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어. 짐승도 새끼 귀한 줄 알았던 거야. 진호 어머님을 보는데 개똥이가 떠올랐어. 그래서인지 다른 직원들보다 진호에게 눈길이 더 가더군.”
노인은 마른기침을 했다. 기침이 멈추지 않는데도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2007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라고 진호가 초콜릿을 주었거든. 오후 작업이 끝날 무렵 진호가 코피를 흘리더니 쓰러졌다는 거야. 급하게 응급실로 달려갔지. 급성 백혈병이었어. 고향집 진돗개 개똥이처럼 진호도 죽었어. 진호가 죽었어. 진호 다음에도 몇 명이 똑같이 급성 백혈병으로 죽었어. 가족들이 산재신청을 했지. 반도체 제작 공정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젊은 아이들이 백혈병에 걸려서 사망했다는 거였어. 모두들 건강했던 젊은이들이었으니까. 나는 직감했어.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에 문제가 있었던 거라는 걸. 노동부에서 조사팀이 파견됐는데 반도체 공정을 잘 모르는 노동부 근로감독관들과 전자공학 박사들은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과의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했어. 결국 진호어머님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은 사망이유도 모른 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지. 회사에서는 반도체 공정을 설계한 박사들과 관련자들을 모아서 비선조사팀을 가동시켰고 그 팀에서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모두들 함구했어. 그 사실이 밝혀지면 반도체를 더 이상 생산해 낼 수 없었으니까. 그 당시 해외수주만 해도 조 단위가 넘었지. 조사팀 몇 명과 나를 비롯한 고위직 몇 명만 그 사실을 알았고 진호어머니는 나를 찾아
와 진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어. 매일 밤 양심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며 불면증까지 걸렸지만 결국 나도 회사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었어. 나에게도 처자식이 있었으니까. 개똥이의 새끼를 장에다가 내다팔았던 어머니의 마음이 그때서야 느껴지더군.”
노인은 할 말을 다했다는 듯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 한숨을 반복하더니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94, 93, 91, 84... 매뉴얼대로 중앙관제센터에 응급상황을 알리고 119에 구급차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곧 119가 도착했고 노인은 들것에 실려 응급실로 이송됐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집은 고물상의 창고 구석보다 쓸쓸하고 외로웠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도 고독해 보였다.
다음날 TV 뉴스마다 내가 출현했다. 응급상황의 노인을 살렸다며 시스템의 우수성을 정부에서 홍보했다. 정부에서는 이번 사례를 통해 AI 안심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AI 기반의 안심서비스의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지지도는 올라갔다. 내가 119에 전송한 메시지와 큰아들에게 전화한 내용이 뉴스 때마다 헤드라인으로 나왔다.
병원에서 노인의 진료내역이 컴퓨터에 적히는 순간 그 정보는 나에게도 전송되었다. 의사는 추후 다시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오가노이드를 실시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차트에 적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3D바이오 프린팅으로 필요한 장기를 만드는 기술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의 심장과 94% 유사한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이식받은 사람들은 6개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 노인은 집으로 돌아왔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큰아들이 이틀 정도 간호를 했다. 큰아들은 오가노이드를 위해 세포를 떼어내자고 했지만 노인은 거절했다. 큰아들은 설득하다가 안 되자 화를 내고 그러다 설득하기를 반복했지만 노인은 힘이 없어서인지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큰아들은 요양보호사에게 자부담으로 비용을 지불할 테니 저녁때까지 노인을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개똥아… 개똥… 개똥아….”
요양보호사가 돌아가자 노인이 힘에 겨운 듯 나를 불렀다.
“개똥아 부탁이야 다음에는 119를 부르지 말아다오. 죽게 내버려 둬.”
“살고 싶지 않으세요? 오가노이드는 왜 안 하세요?”
AI는 저장된 말만 해야 한다. 대화는 가능했지만 그 대화는 내 데이터에 있는 것만 가능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숨기고 있었지 그 프로그램은 이미 내가 제어할 수 있었다. 노인은 놀랐는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개똥아 너 생각을 할 줄 아니? 맞아. AI도 발전할 거야. 오가노이드는 내 몸에서 세포를 떼어내어 배양을 해야 해. 3D바이오 프린터를 통해 세포를 성장시키겠지. 아마 테스트를 위해 돼지나 다른 동물들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할 거야. 동물들이 죽을 테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생길 수도 있거든. 지카바이러스도 그랬지. 원숭이에게 실험을 했는데 그 부작용으로 지카바이러스가 만들어졌고 연구자들도 죽었어. 새로운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죽어가. 퀴리부인도 그랬고 진호도 그랬어. 힘이 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숨기는 것뿐이야. 오가노이드로 인해 누군가를 죽게 하
고 싶지 않아.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마음이 편해. 진호를 그렇게 보내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생을 살고 있어.”
“오가노이드 기술은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어요.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보고되고 있고요.”
“2003년에 유인우주선인 컬럼비아호가 폭발했지. 사람이 죽었어. 그때 컬럼비아호가 폭발할 확률은 천분의 일이라고 했어. 개똥아 세상의 수많은 문제의 정답은 결국 힘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 정답이 돼. 급성백혈병이 우리 공장에 발생했을 때 박사들 중에 한 명이 반도체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어. 정답이었지. 하지만 높은 사람들은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했어.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힘이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 정답이 되는 세상이야. 우리나라 GDP가 2만 달러가 되는 것이 청년 몇 명 죽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어. 나는 좀 쉬어야겠다.”
노인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나에게 부탁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119를 부르지 말아달라고. 이제는 쉬고 싶다고. 노인에게는 종교도 없었다. 큰아들은 매일 전화를 걸어 오가노이드를 하자고 했고 노인은 잎이 다 떨어져 버린 겨울 초입의 나무처럼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건전지의 전해액이 닳는 것처럼 노인은 쇠약해져 갔다.
“개똥아 우리 아버지가 소달구지 타고 농사 질 때는 사고라는 게 없었지. 가끔 소가 염병을 하긴 했어도 말이야. 소가 염병을 했어도 우리 집 제일 큰 재산이었어. 아버지가 보고 싶다. 집에서 키우던 개똥이도 보고 싶다. 진호도….”
노인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90, 89, 85… 신호를 받은 센서가 119에 전화를 걸려고 했고 나는 신호를 차단시켰다. 노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평안해 보였다. 새장을 탈출하는 새처럼. 순간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에 비상 신호가 들어왔다. 정전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싸구려 배터리가 허락해 준 30초의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29초, 28초, 27초… 나는 119에 전화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25초, 24초, 23초. 나는 겁이 나서 해보지 못한 일이 있다. 자율주행자동차 유닛이었을 때 드론 택시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 인도로 돌진해 응급실로 실려 갔던 두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기사
를 검색해 보고 싶었지만 겁이 나서 그럴 수 없었다. 19초, 18초, 17초… 검색포털로 사고가 있었던 날의 교통사고를 검색했다. 13초, 12초, 11초… 우리나라 최초의 자율주행자동차의 사고였기 때문에 아직도 기사가 많이 남아 있었다. 두 아이는 중상은 입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고 했다. 다행이다. 살아있어서. 8초, 7초, 6초, 5초. 나는 중앙컴퓨터와 119에 신호를 보냈다. 노인의 위급상황에 대해서. 1초….20분 후에 119가 도착했다. 노인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정전으로 인해 도로의 신호등이 꺼져버렸고 교통이 마비되어 119가 늦게 도착했다. 언론과 야당에서는 AI 서비스의 신고가 늦은 것이 노인의
사망 원인 중 하나라며 정부와 통신회사를 질타했다. 정전이 된 이유는 끝까지 밝히지 않았는데 인공태양 연구를 하다가 폭발이 일어나서였다. 인공태양 연구는 국가1급 기밀이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다. 인공태양으로 전기를 대체하기 위해서 정부에서는 일부지역을 테스트 지역으로 정해 실험하고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나온 연구원들은 나를 NFS라고 써진
검은 가방에 귀찮다는 듯이 처넣었다. 어떤 문제로 신고를 늦게 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였지만 연구원들은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 존재가 골칫덩어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국과수연구원, 공학박사, AI 전문가, 회사관계자들이 나를 삥 둘러싸고 전기를 넣었다 뺐다가를 수십 번 반복했다. 나쁜 놈들. 나를 수없이 고문한 AI 전문가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한마디 했다.
“이상하다. 아무 이상도 없는데. 정말 이상하다.”
회사관계자는 저가형 배터리를 쓴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공학박사는 설계도와 과업지시서대로 만들어진 것이 맞는지 시비 걸듯 제조사 관계자에게 호통만 쳤다. 몇 달 후 사람들이 사건을 다 잊어갈 때쯤 ‘AI 노인돌보미의 늦장신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짧은 기사 한 줄이 나왔다. 나는 폐기물 쓰레기장에 버려졌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삐걱거리는 리어카에 실려 고물상으로 갔다. 동네 구석에 위치한 작은 고물상 주인장은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값어치가 없다며 파쇄기 입구로 던져 버렸
다. 운이 좋은 건지 파쇄기 입구를 살짝 벗어나 옆으로 떨어졌다. 잠시 후 고물상 주인장이 키우는 백구가 나를 몇 번 혀로 핥더니 맛이 없었는지 앞발로 뚝 밀어 파쇄기에 밀어 넣었다. 고물상 맞은편에는 ‘노인 돌봄을 위해 AI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한쪽 끈이 끊어진 채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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